
대가야(大加耶)의 유물들이 제주를 찾았다.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지난 23일부터 내년 3월22일까지 장장 3개월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대가야의 탐라나들이’ 기획특별전이 그것이다.
전시가 한창인 박물관을 찾아 제주에서 보기 힘든 가야유물을 접해 보았다.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지산동고분군을 비롯한 700여기의 고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가야유물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전시는 고령군에서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전시회로 이미 2003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돼 있다. 이 고분들은 서기 400년경부터 고대국가로 성장해 신라에 멸망하는 562년까지 조성된 것들이다.
고령군의 예산으로 제주에 전시회를 개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제자유도시 제주에서 국내외 관광객을 비롯한 제주도민에게 대가야의 찬란했던 문화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필자는 고고학을 하고 있지만 이런 기회를 접하기 쉽지 않다. 전시유물을 보다 가야의 건국신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2개의 신화가 소개돼 있다. 기존에 알려진 ‘삼국유사’에 실린 가야의 탄생설화로 알에서 깨어 나온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나머지 다섯가야 왕에 대한 난생설화(卵生說話)다.
다른 하나는 건국신화(建國神話)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가야산신인 ‘정견모주가’와 하늘신인 ‘이비가지’ 사이에서 두 형제가 태어나, 형은 대가야의 시조인 뇌질주일(대가야왕 이진아시왕)이 되고 동생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뇌질청예(금관가야왕 수로왕)이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북 고령군은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고분을 비롯한 고고학적 연구성과를 근거로 대가야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강조하고, 한국역사의 고대를 삼국시대가 아닌 가야를 포함한 4국시대론을 주창하고 있다.
이를 보면서 지역사회에서 자기지역의 정체성확립과 역사인식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시장 중간에 탐라의 유물도 소략하게 전시돼 있었다. 아무리 대가야 중심의 전시지만 탐라역사의 한 단면을 보면서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고대 탐라역사 연구가 아직 걸음마 수준임을 다시 한번 절감한 순간이었다. 아울러 제주에서 탐라의 역사를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제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축제에서 탐라를 떠든다. 목소리만 높을 뿐이다. “탐라의 실체를 알면서 외치는 것인가” “제주도민에게 탐라의 역사를 고취시켜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큰 목소리의 대답이 힘들다.
그저 제주의 옛 이름이 탐라라는 사실에 머물러 있는 게 대부분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과거의 탐라를 지금처럼 그냥 그렇게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도 지금은 사라져버렸지만, 십수년전 제주도에서 만든 ‘제주사 정립’을 위한 협의체가 있었다. 현재 제주에는 기초자료를 모으고 연구성과를 집대성하는 중심체가 없다. 제주만의 탐라역사 연표를 만들어야 함에도 그러하다.
가야처럼 일본 오키나와의 유구왕국처럼 탐라의 역사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삼성신화도 탐라개국신화로 변모시킬 필요가 있고 다른 수많은 신화도 탐라의 역사를 밝혀줄 자료가 된다. 이러한 제주역사 정립을 실현시킬 현실이 녹록치 않다.
이에 따라 고고학적 자료도 수반돼야지만 역사·신화·언어 등 제주학 관련 분야를 망라하는 추진기구가 절실함을 주창해 본다. 제주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좋지만 탐라역사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야 말로 앞으로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로 가는 기초석이 될 것이다. 과거가 없는 미래가 있을 수는 없다. 과거가 없는 현재가 있을 수도 없다. 현재도 언젠가 과거가 된다. 현재 우리가 이뤄 나가야 미래의 제주가 있고, 다음 세대에 떳떳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부터 준비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