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부산영화제에 소개된 다큐멘터리 ‘제네시스 - 세상의 소금’은 브라질 출신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에 대한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다. 동시대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깊은 이 감독이 살가두에 주목한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어려서부터 살가두의 사진작업에 함께 다녔던 아들 훌리아노와 벤더스가 공동으로 감독했다. 워낙 그의 사진작업에 대해 존경과 경외를 갖고 있었고, 기자인 이자벨 프랑크가 그와 대담하며 기록해 발간한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벅찬 감동을 느꼈었기에 그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어쩌면 부산영화제를 찾는 제일 큰 목적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1944년생인 살가두는 70년대 초반 파리에서 경제학 박사과정 중 건축학도였던 아내의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다 사진에 빠져들었다. 아프리카 내전 난민들이 겪는 살상·대이동·기아·가뭄·질병의 고통뿐만 아니라 아메리카대륙과 인도네시아 등 극심한 노동환경 속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사진작가로서 그들의 삶의 현실을 진지하게 기록해냈다.
“자기 시대의 비극을 몰라도 좋을 권리가 아무에게도 없다”는 책임감으로 고통의 현장을 기록했던 작가였지만 20세기 가장 극단적 인종말살의 잔인한 현장인 르완다에서 마주한 증오와 폭력에 결국 마음의 병을 얻고 만다. ‘제네시스’ 사진 프로젝트는 세상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의무를 느끼고 고통의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하나가 되며 사진으로 현실을 말하던 작가에게 축적된 마음의 고통을 치유해준 가장 최근의 작업이다.
고통과 두려움에 가득한 눈망울, 잎 하나 없이 말라버린 작은 나무 한 그루 서 있는 황폐한 사막에 홀로 가느다란 가지를 지팡이 삼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하고 마른 나무와 다를 바 없이 서 있는 소년, 교실에 가득 쌓인 살해된 죽음 등을 기록하며 그 고통이 내면화됐던 살가두. 그런 그에게 여전히 훼손되지 않은 지구의 곳곳을 다니며 그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내는 작업은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동물을 촬영할 때는 가만히 기다리고 관찰하며 자신을 그들의 일부로 느낄 때 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담아내었다. 2004년 갈라파고스를 시작으로 숨 막히도록 아름답고도 경이로운 그의 사진으로 소개된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들은 지금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무엇을 왜 찍어야 하는가’와 그 대상과 ‘어떻게 하나가 되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그의 사진들은 세상을 직시하는 진지함과 겸손한 그의 삶의 태도가 반영된 것이다. 그는 1964년에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브라질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에 참여하던 중 결국 고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면서 국외저항에 참여했다.
경제학자로서 세계은행·유엔식량농업기구와 협력해 아프리카 경제개발과 자금지원에 관여하며 그는 사진가로서 아프리카를 재발견했고 노동자에 대한 존경과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전 세계로부터 끌어 모았다. 고통의 현장을 기록하며 얻은 우울증은 ‘제네시스’라는 사진작업과 먼지 폴폴 날리는 황폐한 자신의 고향 땅을 비롯한 대서양 삼림을 숲이 우거지고 물이 흐르는 생명의 땅으로 되살려내는 실천으로 이겨냈다.
여전히 건장해보이지만 온통 하얗게 바랜 숱 많은 눈썹의 그가 아내 렐리아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들이 되살려내고 있는 숲에 심겨질 식물들이 자라는 농원에서 한 곳을 가만히 함께 바라보는 장면. 그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그가 지금껏 살아오며 이 지구의 현실을 담아낸 사진들이 떠오른다.
2014년이 저문다. 올해에 벌어진 일들을 회상해본다. 대부분 안타깝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분노가 치미는 일이다. 살가두가 말했듯 우리에겐 이 현실을 몰라도 좋을 권리가 없다. 잊지 말고 기억의 저장고에 잘 보관해야 할 일이다. 내면화되는 고통을 치유해줄 생명과 평화의 2015년을 희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