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더럽히는 공무원 瀆職
1970년 5월, 당대의 비판적 종합월간지 ‘사상계’ 5월호에 한 편의 시가 실렸다.
김지하(金芝河)가 쓴 발라드 풍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이었다.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을 짐승같은 다섯 도적으로 엮어 그들의 질펀한 ‘도둑시합’ 장면을 통해 당시의 부패한 사회 현상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번득이는 해학과 날카로운 풍자는 서슬 퍼렇던 유신 독재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해 6월2일, 김시인은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것이 세칭 ‘오적 필화 사건’이다.
이로부터 35년이 흐른 2005년 5월, 청정성를 자랑하는 평화의 섬, 제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오적’과 필적할 만한 거창한 도적들 이야기는 아니지만 도민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 예산을 갉아 먹었던 부패한 고위 공무원들과 사회 단체장의 ‘좀도둑질’이 얼룩지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전임 지사 시절의 도 기획관리실장은 사회단체장에게 2000만원을 요구했고 같은 시절의 도지사 비서실장은 2000만원을 받아 착복했다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이와는 별개로 또 다른 도 산하 단체 보조금 8000만원과 관련한 공무원 독직(瀆職)의혹에 대해서도 경찰이 수사중이다.
몸통은 숨고 깃털만 쇠고랑
그런데 이상한 일도 다 있다. 공직을 더럽힌 이들에 대해 공무원사회의 눈길이 차갑지 않아서다. 냉기를 느낄 수가 없다.
되레 안쓰럽다는 듯 동정적이다. 사회 일각의 분위기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쪽이다.
1973년이었던가. 마치 ‘스톡홀름 은행 인질 강도 사건’ 때 인질들이 자신들을 구해주려는 군.경보다 인질범들에게 동조했던 비상식적인 심리상태인 이른바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는 듯 하다.
뇌물 수수 혐의의 공직자들에게 보내는 동정론이 그렇다.
“구속된 두 사람은 ‘깃털’로서 총대를 맬 수 밖에 없었고 이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돈을 먹은 ‘몸통’은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번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몸통으로 불려지는 부도덕하고 탐욕스런 ‘큰 도둑’은 누구이며 어디에 숨었는가.
사실 공직사회의 생리를 아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쉬쉬하며 몸통의 이름이 실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측도 많다.
그래서 공직의 명예를 더럽힌 이번 독직사건의 몸통을 공무원 노조 등 공무원 조직이 앞장서서 밝혀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주의 공무원 조직이 온통 부패집단으로 매도되는 불명예를 안고 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나서 진실 밝혀야
그렇지 않아도 제주사람들은 중앙의 수탈과 연이은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려 왔다. 이들의 노략질로 백성의 삶은 피폐했고 민심도 황폐했었다.
고려 때 나득황(羅得璜)은 백성들을 수탈하여 그 돈으로 제주부사(濟州副使)가 되었다. 그는 횡령죄로 면직된 전임 송소(宋 )의 후임이었다.
이때 제주백성들은 “전에는 작은 도적을 겪었는데 이제는 큰 도적을 만나게 됐구나” 한탄했다고 목민심서(牧民心書)는 기록하고 있다.
제주의 공직비리 역사는 이렇게 오래다.
이같은 수탈과 오욕의 아픈 역사를 뛰어넘기 위해서도 최근 고위 공직자 독직 사건의 진실은 밝혀내고 몸통도 찾아 응징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제주 공무원들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마침 중앙부처 합동 감사반이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차제에 사회단체 보조금 착복이나 뇌물사건의 전말을 비롯, 제주최대의 의혹으로 악취가 계속되고 있는 ‘호접란 대미 수출 사업 의혹’ ‘인공어초사업 특혜 의혹’ ‘광역 소각장 불법 하청 의혹’ 등 각종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히 진실을 파헤쳐 책임소재를 밝힘으로써 깨끗한 공직상을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이 같은 의혹들을 파헤쳐 공직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감사의 본 뜻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