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부도 '세금으로 지역구 챙기기 동조' 비난 불가피

원희룡 도지사와 도의회 간 ‘진실공방’으로 전개됐던 ‘도의원 1인당 20억 재량사업비 요구설’에 대한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름과 금액에서 차이가 날 뿐 비슷한 성격의 예산을 도의회가 요청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진실게임이 일단락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구성지 제주도의회 의장은 22일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지난 19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밝힌 ‘도의원 1인당 20억 요구’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구 의장은 “6·4지방선거 직후 새누리당 당선자 워크숍에서 동료 의원이 원희룡 지사에게 지역에 공약사업 예산이 필요하니 10억원(공약사업비)을 반영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다고 털어놨다.
공약사업비란 이름으로 요청은 했지만, 도의회가 사실상의 ‘재량사업비’ 성격의 예산 요청이 있었음을 구 의장 확인한 것이다.
구 의장은 관련 예산의 구체화를 위해 제주도 고위공직자들과 실무접촉이 있었다고도 밝혔다.
구 의장은 “박정하 정무부지사와 박영부기획조정실장을 집무실로 불러 의원별 3억5000만원 내외의 예산(현안사업비)을 10억원으로 인정하고, 지사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집행부와 도의회의 금액차로 이견이 생긴다.
당시 박 실장은 “의회가 너무 많은 예산을 요구 하고 있다”면서 “공약사업비를 5억원으로 낮추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구 의장은 “우근민 지사 시절에 5억원 수준까지 합의한 적이 있었다”면서 “고작 1억 5000만원 내외로 증가하는 것인데 ‘의원들을 설득하기에 부족한 액수’라고 거절했다”고 밝혔다.
구 의장은 그러면서 “도지사가 공약사업비 10억을 약속했고, 집행부가 5억원을 제안했기 때문에 이 금액을 나누자고 했다”면서 “전체 15억원 중 8억원은 3억3000만원(현안사업비) 쪽으로 넣고, 공약사업비 10억원은 7억원으로 낮추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제주도의회는 원 지사의 라디오 인터뷰 사태가 불거지기 직전까지 집행부 고위 공직자들과 공약사업비에 대한 실무협상을 진행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원 지사의 입을 통해 ‘의원 1인당 20억 요구설’이 터지면서 그동안의 협상은 물거품이 됐다.
결국 도의회와 집행부가 금액과 이름만 다를 뿐 “세금으로 지역구 챙기기”란 지적을 받고 있는 ‘재량사업비’ 성격의 예산을 협상을 통해 나누려고 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양 기관 모두 도민사회의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제주도의회는 이날 전체의원회의를 열고, 원 지사가 지난 19일 KBS라디오에서 ‘의원 1인당 20억 요구’한 것에 대해 “원 지사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다면 예산안 심사도 없다”고 촉구했다.
이날 오후 박정하 부지사는 제주도청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 지사 적당한 시기에 유감을 표명하겠다고 밝혔다”면서 “의회에 대한 존중 표명과 오해에 대한 적절한 방식의 유감표명을 위해서라도 정무라인 차원에서 의회와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체가 없지도 않은 사실 ‘폭로’에 대한 사과를 예산안 심의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제주 도내의 좋지도 않은 일을 중앙방송을 통해 전국에 공개한 원 도지사의 처사도 경솔했다는 등 양비론이 도민 사회에 일고 있다. [제주매일 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