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敬沃 교육장을 회상한다
高敬沃 교육장을 회상한다
  • 허계구 논설위원
  • 승인 2005.0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월 달은 선생님들에게 있어선 더욱이나 바쁜 달이었다. 그 날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 강 선생님은 방과 후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 환경정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때 조용히 교실 문이 열리고 고 장학사가 들어왔다. 너무나 뜻밖의 방문에 놀란 강 선생님은 환경정리를 멈추고 그를 맞아 들였다. 그러나 장학사는 강 선생님이 부지런함을 칭찬하면서 그더러 일을 계속하도록 고집했고 강선생님은 그리하여 장학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환경정리의 일을 계속했다. 어느 정도 그날 할 일이 끝나자 둘은 마주 앉아 교육 목표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고 있었다. 학급 교육목표를 물어 왔을 때 강 선생님은 정의로우며 용감하며 지혜로운 아이들로 키우려 한다는 그의 포부를 토로했다.

영원불멸의 정의 '교육은 사랑'

강 선생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장학사는 “그러나 선생님” 하고 드디어 말을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선생님이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하여 가르친 아이들이 어른이 된 다음에 선생님을 향하여 삿대질을 하고 책상을 두들기며 싸움질을 해오는 것을 상상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제 비로소 강 선생님은 고 장학사의 갑작스런 방문 목적을 알았다. 강 선생님은 얼마 전에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대판 싸움을 벌였다. 이 일은 교육청에까지 알려졌고 그리하여 고 장학사는 그 때문에 학교로 온 것이었다.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강 선생님의 초등학교 은사였다.

“강 선생님” 하고 장학사의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교육에 대한 정의는 시대를 따라 또 학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리 말하여져 왔고 또 달리 말하여져 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본 영원불멸의 교육의 정의가 있으니 그것은 교육은 사랑이라는 정의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늦게 남아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정한 법정 시간을 따지지 않고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국가가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최소한의 생활 보장에 만족하면서 우리들의 마음을 아이들에게 쏟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어떠한 다른 대가를 생각하고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사랑은 순수하며 그 사랑은 이기주의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나 강 선생님! 인간은 알버트 슈바이처가 말한바와 같이 고무되기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이 고달픈 세상에서, 선의지를 꺾고 악성을 충돌질하는 일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들은 격려되기를 바라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키운 아이들이 자라서 우리들이 쏟은 정성을 알고 우리에게 미소의 손짓을 하여 올 때 그것으로 우리는 자만해 지려는 것이 아니라 힘을 얻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학급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가고 있듯이 교장선생님은 선생님을 한 때 그와 같이 키웠던 것입니다.

 아! 그러한 선생님의 은사에게 설령 그 교장선생님에게 잘못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단 말입니까?” 장학사는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장학사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강 선생님은 자기도 모르게 꿇어앉았다.
그날 해질 무렵에야 강 선생님은 교문을 나섰다. 한 줄기 가벼운 바람이 그의 빗질하지 않은 검정빛 머리칼을 부드럽게 부채질하면서, 그의 눈 속에 자성(自省)의 아름다운 눈물의 이슬을 촉진하면서 그의 눈썹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눈 속에 自省의 눈물이…

강 선생님은 그날 밤 당장 옛 스승인 그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꿇어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스승이 베풀어준 일들을 낱낱이 상기하면서 그의 철모른 행동이 가져다주었을  환멸에 공감하면서 그는 사죄했고 그들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화해를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 청년 교사의 뻗어나고 있는 교육에의 정열과 의욕을 희생시키지 않고 또 징계라는 감정을 남기기 쉬운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성하게 하고 화합을 가져오게 하는 조용하나 현명한 방법에 의해 사제간에 빚어진 하극상의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 후에 강 선생님은 장학사를 거쳐 교장이 되었고 고 장학사는 교육장이 되었다.
나는 그 분이 교육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시골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초년생이었지만 그분과 상당히 가깝게 지냈다. 우리들은 교육장실에서 단둘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동양학에 대한 이야기에 열중하곤 했는데 나와 이야기를 나눈 그 많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랑 같은 일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위의 이야기도 고 교육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강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어서 알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