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말고 열심히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동화구연이나 ‘책놀이’ 강사 일이다. 특히 요즘은 책놀이 지도자과정을 강의하러 다니고 있는데 돈도 벌지만 강의가 재미있다. 새로운 것을 가르치려 하다 보니 바쁘다는 핑계에 밀쳐두었던 책도 읽게 되고, 연극작업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게 되고, 참 두루두루 좋다.
우리 아들은 고1이다. 학교 공부가 싫어, 아니 해야 할 과목이 너무 많고 어려워 불행하다고 투덜대는 아직 어린 애다. 책이라도 읽으라고 하면 내뱉는 말, “시간 없어” “학원 가야 돼” “시험이야” 등등. 들어보면 결국 학교 성적과는 무관한 책은 못 읽겠다는 얘기다. 안 읽겠다는 얘기다.
초등학교 때는 그래도 곧잘 읽더니 아마도 중학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안 읽었지 싶다. 우리 아들뿐만이 아니다. 오죽해야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읽는다고 꼽는 책들이 ‘중학생을 위한 국어어휘력 만점 공부법’ ‘이것이 진짜 공부다’ ‘고전은 나의 힘 세트’ 같은 책일까. 이 책들은 한마디로 국어단어나 고전 요약을 외우는 공부 기술을 익히는 책들이다. 이게 청소년들의 책읽기 목표가 된 것이다.
이처럼 중·고등학교 때 책읽기 습관이 안 길러졌는데 대학교에 들어갔다고 책이 잘 읽힐까. “어려운 책은 손에 잡으려고도 안한다. 들고 다니며 읽고 있는 책이라야 취업서 정도”라던 어느 교수의 탄식이 떠오른다. “앞으로 이 사회는 표피적인 사회, 질문과 호기심이 사라진 사회, 무식한 사회”라고 한 말, 두렵다.
여고시절, 시집이나 소설책 하나 안 끼고 다니면 안 쳐주던 그 시절, 누구나 시인이었고 소설가였는데. 지금은 책 대여하러 도서관 가는 일도 거의 없고 책이라야, 엄마들이 바쁜 아이대신 가서 빌려가는 동화책, 만화책이 주를 이루고, 도서관은 시험공부만 하는 곳으로 변질돼 버렸다.
더 가다가는 질문도 없고 호기심도 없는 사회가 온다니 두렵지 않겠나. 교사들조차 책 읽지 말라는 데에 동조 아닌 동조를 하고 있단다. 아는 고등학생이 해준 말인데 교실에서는 교과서 외에는 책을 못 읽게 한단다. 쉬는 시간에 해리포터 읽다가 영어단어 하나 더 외우라며 꿀밤 맞고 책을 뺏겼다고. 같은 아이들도 문제지를 풀지 않는다고 한심한 눈으로 본다니 학교 안에서 책 읽는 게 무슨 죄인이라도 되는가보다.
필자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못된다. 늘 작품 할 때마다 내 머리를 탓한다. 이것밖에 생각 못해낸다고, 다 책을 안 읽어서 그렇다고, 책 속에 길이 있다지 않나. 창의적인 생각이나 기술혁신, 실용적인 지식 등은 독서의 깊이와 무관하지 않다. 허나 요즘 우리 사회가 스펙이나 스킬만 요구하는 사회다보니, 한 마디로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책이냐고 타박할 지도 모르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렇다. 그저 말 잘 듣고 잘 따라와 주는 이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지 의문이다. 허나 분명한 건 문제의식 없는 인간을 요구하는 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학교는 책을 읽고 질문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영어·수학 위주의 공부에서 과감하게 책을 통한 인성교육,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해야 한다. 미래의 일꾼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로 키워야 한다면서 질문하나 할 줄 모르고 사고할 줄 모르는 아이로 가르치고 있다면 미래의 일꾼양성은 그저 허무맹랑한 구호일 뿐이다.
내 강의는 꼭 질문하는 시간으로 끝마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저 입을 꽁 닫고 빨리 끝내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질문할 줄 모른다. 아니 여럿이 있는 데서는 질문을 안 한다. 강의 마치고 나오다보면 따라와서 “저기요” 하는 사람을 꼭 만난다. 어른이 이런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어른부터 책 좀 읽자. 결국 이 사회가 책 안 읽는 사회라고 한다면 우리 집에서는 책 읽는 집안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아이를 이 사회가 바라는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려면 책부터 손에 잡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