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올레 14번째 길을 열다
규슈올레 14번째 길을 열다
  • 제주매일
  • 승인 201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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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무국장 안은주

제주올레가 일본 규슈(九州)에 14번째의 길을 열었다. 지난 6·7일 일본 규슈 올레 13번째 코스와 14번째 코스가 만들어져 개장했다.

13번째 코스는 규슈 후쿠오카(福岡)현의 중산간에 위치한 작은 도시 야메(八女)의 고분과 거대한 차밭, 그리고 오밀조밀한 마을을 지나는 길이다. 한국의 경주 같기도 하고 보성 같기도 한, 아주 오래된 일본 시골 마을의 역사가 길 곳곳에 배어 있는 길이다.

14번째 코스는 온천으로 유명한 오이타(大分)현 벳푸(別府)의 속살을 지나는 길이다. 해발 600m에 화산 폭발로 생겨난 시카타(志高)호수에서 시작하는 벳푸 코스는 걷는 내내 쫓아 다니는 웅장한 유후산과 울창한 삼나무 숲을 지난다.

벳푸는 워낙 유명해 다녀온 이가 많지만, 벳푸 올레로 보는 벳푸는 그동안 보아왔던 벳푸의 모습이 아니다. 벳푸 사람들조차 새로 개장한 코스를 걸으면서 “벳푸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줄 몰랐다”고 감탄할 정도다. 이번에 2개 코스가 새로 개장하면서 규슈에는 모두 14개 코스 166.4㎞의 올레길이 생겼다. 다케오·히라도·카미 아마쿠사·오쿠분고·다카치오·기리시마·이브스키·오오시마 등에 제주가 ‘수출한’ 올레길이 있다. 

규슈올레가 첫 문을 연 것은 2012년. ‘2박3일 렌터카 여행’의 상징이었던 제주도를 자주 찾는 장기 체류 여행지로 제주올레가 바꾼 것에 주목한 일본의 규슈(九州)관광추진기구가 ㈔제주올레에 자문을 요청하면서 시작했다.

규슈 역시 제주도처럼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단기 관광지였다. 규슈도 제주처럼 오래 머물고 자주 찾게 만드는 여행지로 만들고 싶다며, 제주올레에 도움을 요청했다. ㈔제주올레는 규슈로부터 비용을 받고 올레길 브랜드 사용권과 함께 코스 조성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규슈올레를 두고 ‘문화수출’이라며 응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올레길의 원조를 빼앗기는 일이 될 것’이라며 걱정하는 이도 있다. ㈔제주올레는 규슈올레 초창기 때부터 ‘주객이 전도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나름의 장치를 마련하긴 했다. 그러나 ㈔제주올레가 규슈올레를 내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걷는 길로서의 생명력’을 갖는 것이다. 제주에 있든 규슈에 있든 올레길은 하나의 길이며, 그 길 위에서는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자연과 문화를 즐기며 위로를 받고 마음을 나누면 되니까.

규슈 올레는 개장 후 지난 7월까지 누적 방문객수가 7만3700명이나 됐다. 한국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길이어서 아직까지는 일본인(46.9%)보다 한국인이 더 많이 걷지만, 일본인에게도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코스 자문을 위해 ‘규슈올레 탐사대(규슈올레는 일본 공무원들이 탐사를 한다)’를 만날 때면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올레 탐사대는 걷는 사람들이 행복한 길, 길 위에 사는 지역민이 행복한 길, 이 길을 내어준 자연이 행복한 길을 찾고, 유지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려면 자유로운 영혼, 뜨거운 심장, 튼튼한 허벅지를 가져야 한다”라고.

길을 찾는 사람들이 여행자의 자유로운 영혼에 공감해야 걷기 좋은 길을 찾을 수 있고, 지역민의 행복을 고민할 만큼 뜨거운 심장을 가져야 지역민을 배려한 길을 찾을 수 있다. 또 이 길을 내어준 자연이 행복한 길로 살뜰하게 유지 관리하는 것도 길을 찾는 자들의 몫이다. 더 좋은 길, 더 배려하는 길을 찾으려면 허벅지는 저절로 튼튼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새로 연 2개 코스의 탐사대들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허벅지가 튼튼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벳푸 코스의 경우 1년 전 처음 제안했던 경로에서 80% 이상이 바뀌었다.

5차례에 걸친 심사와 코스 수정 과정을 거치며 길도 훨씬 좋아졌지만, 탐사대의 영혼과 심장 그리고 허벅지까지 ‘올레 탐사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무엇보다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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