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말에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했다. 겨울비가 내린 뒤 갑자기 찾아온 강추위에 몸을 움츠리다보니 저절로 느껴지는 ‘진리’다. 이제 이러한 겨울을 힘들게 보내는 이웃이 없는지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며칠 전 부산에서 미화원으로 일하는 아저씨 한분의 사랑 나눔 소식에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자신이 25년 동안 길거리 청소를 하면서 주은 동전을 모아 놓았던 2만7010원이 들어있는 돼지저금통과 자기돈 20만원을 보태어 불우 이웃성금으로 기탁했다는 보도였다.
그런데 2013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단 36.4%만이 기부에 참여하고 있고, 자선·구호재단(CAF)에서 조사한 세계기부 지수에서 한국은 45위에 그쳤다고 한다. 나눔과 기부문화는 자원봉사와 함께 한나라의 문화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선진국은 국민소득과 같은 경제적인 수치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제·정치·문화·의료와 교육 등 시민들의 생활 전반적인 측면에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삶의 질이 확보됐을 때 비로소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행위로 계층간 통합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나눔과 기부 문화의 발전이 이뤄졌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선진국이 됐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 초반까지만 해도 외국의 원조를 받는 나라였지만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선진국으로 상징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있는 만큼 기부문화에 있어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재벌들의 15%가 본인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는 등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선행이 미국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쳐 미국인들의 98%가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기부는 더 이상 소수 부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피플 오블리주(People Oblige)’가 됐다.
이처럼 대부분의 선진국은 전체 기부액의 70~80%가 일반시민이 정기적 ‘십시일반’한 소액기부가 차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부액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기부의 70%가 연말연시에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안정적인 기부금 운용을 어렵게 한다고 한다.
최근 우리 제주는 저출산 노령화사회 진입, 핵가족화, 다문화가정 증가, 실업 등 사회구조 변화 속에 어렵게 살고 있는 이웃들이 급속하게 늘어가고 있다.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행정기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제주 선인들이 콩 반쪽도 나눠 먹는 마음으로 서로 도우며 척박한 섬 제주를 삼무(三無)의 행복공동체로 만든 것처럼 민간차원의 관심과 온정이 절실히 필요하다.
제주농협에서는 지난 2006년 ‘제주농협 행복나눔 운동본부’를 만들어 임직원 기부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현재 임직원 2400여명이 매월 자동이체를 통해 1만~2만원씩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9년간 누계로 15억원을 모아 지역사회에 기부했다.
이에 필자는 매달 1만원을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범도민 기부문화운동’을 제안해 본다. 부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강요하기 보다는 ‘나부터 참여하는’ 피플 오블리주를 실천할 때 다함께 행복한 제주공동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다.
중국 명대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뤼신우(呂新吾)가 쓴 ‘신음어(呻吟語)’에 나오는 구절을 다시 한 번 마음속 깊이 되새겨 본다. “임종 때는 아무것도 몸에 지니고 가지 못한다. 오직 마음만을 지니고 갈 뿐인데도 사람들은 그 것을 소홀히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