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닿지 않는 그 곳에
과학이 닿지 않는 그 곳에
  • 제주매일
  • 승인 2014.1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제주대 교수 김은석
영화 ‘노트북’. 한 남자가 부인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녀는 기억을 잃어버린 치매환자이다. 남편은 부인의 기억을 되살려주기 위해 늘 그녀의 자서전을 읽어준다. 의사는 노인성 치매는 불치병이라며 그만 두라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과학이 닿지 않는 그 곳에 기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의 발전은 신의 영역까지 넘볼 정도이다. 제주도와 육지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었다는 설문대할망이라도 해저터널을 만들 수 있는 토목공학기술을 능가할 수 없다. 제우스의 천둥번개가 아무리 강해도 핵폭탄의 위력을 넘지 못한다. 의학과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들이 양산되고, 에덴동산에서나 맛볼 수 있던 과일들이 사시사철 식탁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한계는 있다. 헉슬리(Aldous Huxley)는 그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믿음에 강한 의문을 던진다. ‘소마’라는 약 한 알로 모든 고통을 잊고 살아가는 멋진 신세계는 사실 유토피아가 아니라 오만이 빚어낸 가공할 디스토피아인 것이다.

과학의 발전은 현대문명의 대세이다. 문제는 과학의 남용과 오용을 막는 길이다. 과학의 대척점에 인문학이 있다.

인문학이란 말 그대로 ‘인간다움’이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삶의 가치를 다루기에 인문학은 배고픔이나 질병의 대안은 될 수 없다.

그러나 물질적 충족, 경제적 풍요 자체가 우리들 삶의 진정한 가치일 수 없으며, 따라서 목적일 수 없다.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빵만의 만족은 공허할 따름이다. 우리가 소나 돼지가 아닌 이상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하고, 또 어떤 태도로 생명을 다루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에서도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빵을 먹는데 만족하라고 요구한다. 어쩌면 먹고 살기 어렵고, 취업률이 대학평가의 주요 척도가 되는 현실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다.

사실 먹고, 자고 돈 버는데 인문학은 가진 자의 사치로 비춰진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살아가는 의미를 알고, 삶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1990년대 말 IMF 금융위기 당시에는 인력의 문제가 있었다. 우리나라 금융계는 최고의 엘리트들이 몰려 있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돈을 어떻게 버는 데 있었지, 어떠한 태도로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경쟁을 통해 경제적 이익이 창출과 확보라는 자본주의 논리 앞에 전인적 교양이 무색한 결과에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배고플 때일수록 인문학적 사고가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인문학은 인간다움이 무엇인가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인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은 비교되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다움’을 동물과 비교해 교양에서 찾았다. 오직 인간만이 교양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야만인을  짐승과 같은 사람이라고 경멸했다.

오늘날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우리와 같은 인식능력과 언어구사능력을 갖춘 사이보그, 즉 인조인간이 등장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만일 그 세상이 온다면 ‘인간다움’은 동물이 아닌 사이보그와의 차이에서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노트북’에 나오는 과학이 닿지 않는 그 곳에 기적을 소망하는 따뜻한 감정이 아닐까. 따뜻한 감정은 오직 인간만이 갖는 고유 능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문학과 과학의 아름다운 동행에 나서야 한다.

인문학적 따뜻함과 상상력이 없으면 문명의 방향과 목표가 제시될 수 없으며, 과학적 방법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따뜻함과 상상력도 공허한 메아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

지역경제의 최대창출을  화두로 삼는 시대는 ‘돈 벌이 하는 일’ 못지않게 나를 돌아보고 상대를 바라보는 따뜻한 감성이 더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제주사회에 인문학의 존재 이유가 절실한 게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