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24일~26일 2박3일간의 아름다운 동행이 있었다. 제주에 거주하는 6개 국가의 어머니와 자녀 등 다문화가족 20가정이 ‘육지부로’ 조선시대 역사 탐방을 나선 것이다.
언제나 언니 오빠에게 양보해야 했던 엄마의 따뜻한 손을 꼬옥 잡고 단둘이서만 여행을 하게 된 S양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 말문을 열었다. “원장님, 저는 엄마하고 단둘이만 이렇게 버스를 많이 타 보는 게 처음이에요. 너무나 좋아요” 싱글벙글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S양은 경복궁에서 역사 선생님의 설명도 열심히 잘 들으면서 간간이 메모를 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오랜만에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는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 할 때 쯤 버스는 숙소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2시간의 긴 이동시간에 우리는 서로 닮은 사람들이라는 사실과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됐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그들만의 생활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던 울긋불긋 쌓아놓은 마음의 짐 보따리를 하나하나 꺼내어 풀어 놓았다. 어머니들은 고부간의 갈등과 남편에 대한 풀리지 않는 ‘숙제’에 대한 의무감 같은 느낌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저마다 보이지 않는 마음속 깊은 곳에 쌓여진 상처들과 나랑 똑같은 고민과 방황 속에 빠져있다는 사실은 멍든 가슴을 위로하게 되고 스스로를 부축이게 된다. 눈물을 글썽이며 파르르 떨리는 어깨들 너머로 S양이 마이크를 잡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S양의 ‘충격적인’ 고백이 시작됐다. S양은 “마음속에서 가장 버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예, 저는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싶어요”라고 답한 것이다. 뜻하지 않은 답변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진지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면서 바라보는 S양의 시선에 조용히 “S는 자살이 뭔지 알아요?”라고 다시 되물었다.
그러자 S양은 “있잖아요, 자살은 혼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에요”라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스스럼없이 쏟아냈다. 아주 심각하고 구체적인 설명에 버스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고 그 다음 내용에 모두가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 이어서 물었다. “S양은 언제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에 S양은 답했다. “아빠가 큰소리로 엄마와 싸우면 숨거나 귀를 막아버리는데요. 너무 무서워서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살을 생각하게 됐어요”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데 S양은 좀 전보다 약간 가벼워진 목소리로 “그런데 저 이제는 자살 하는 생각 안 할 거예요. 지금 엄마랑 둘이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마이크를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소리와 함께 버스안의 무거웠던 분위기가 정리되면서 또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고 살짝 떨리듯이 발표하는 R양의 이야기에 우리는 다시 한번 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R양은 “마음속에 있는 것 중에 가장 버리고 싶은 것이 뭐라고 생각해요?”라는 질문에 밝았던 R양의 목소리는 거친 호흡과 함께 “저는 동생들을 버리고 싶어요”라는 역시 놀라운 답변이 나왔다.
이유를 알아본 결과 지난해 같은 빌라에 사는 동생뻘의 아이들이 R양을 놀리고 왕따를 시켜서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는 엄마의 울먹이는 소리에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면서 소통, 공감하게 됐다. 한 가정 속에 또 다른 개인의 마음을 열어 주었던 귀하고 의미 깊은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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