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스며든 예술가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제주에 스며든 예술가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 제주매일
  • 승인 201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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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호 재단법인 안양문화예술재단 문화정책실장

▲ 송경호 안양문화예술재단 문화정책실장
당초 구좌에서 하루 묵으려던 계획은 틀어졌다. 집주인은 출장 중이었다. C형은 올해 초 구좌에 둥지를 틀었다. 용눈이와 다랑쉬, 아부오름 등이 지척이기 때문이란다. C형은 모두 다섯 권에 이르는 오름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출판사와 계약을 끝내고는 곧바로 제주로 날아왔다. 바닷가 산책이나 오름 오르는 시간을 빼곤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C형은 백두대간을 넘나든 산악인에다 목사, 작곡가, 동화^르포 작가 등으로 긴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왜 중년 넘겨, 하필이면 오름에 매달리는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그저 오름이 좋아서라는 뻔한 답이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C형의 외출로 구좌 대신 애월에서 나흘 묵었다. 그 곳에서 2층짜리 작은 펜션을 운영하는 후배는 동네에서 '작은 박물관 P관장'으로 불린다. 400여 점에 이르는 유물과 전각 등을 싸들고 2년 전 제주에 정착했다. 돈 되는 펜션 1층을 돈 안 되는 '작은 박물관'으로 꾸몄다. 유물들의 임시 거처다. 그리고는 누구든 아무 때나 관람을 원하면 신들린듯 유물의 내력을 풀어댄다. 그가 가장 신명나는 순간이다. 후배의 꿈은 별 것 없다.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유물들의 제자리 찾기다. 거기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 한다. 녀석은 때가 거의 임박했다 한다. 근거가 뭐냐고 역시 묻지 않았다. 정성을 다 하고 있으니 하늘이 들어줄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비 오는 주말 찾아간 서귀포에서는 '나름 기획자' L씨를 만났다. 3년 전 크게 벌인 판을 말아먹고 무작정 찾아 든 곳이 서귀포다. 잠시 숨고르기로 여겼던 제주살이가 어쩌다보니 3년 지났다. 그 새 제주 설화에 푹 빠져 닥치는 대로 자료와 논문을 섭렵하고 있단다. 과연 콧구멍만 한 방은 온통 책과 자료로 가득하다. 내심 하룻밤 묵고 가려던 마음을 접어야 했다. L씨는 틈틈이 정리한 '기획 아이디어'를 내비치곤, 제주 설화로 '쌈빡한 무대'를 선뵈겠노라 장담했다. 왜 제주 설화인지도 물으려다 말았고, 그게 아이디어만 갖고 되겠나 싶었지만 굳이 따지지 않았다. 3년 전 실패 경험과 제주 설화가 주는 영감은 모두 그에게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 믿는다. 독거(獨居) 생활 3년 또한 L씨를 더 강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새 제주를 향해 부는 바람이 거세다. 먼 대륙과 가까운 뭍으로부터 사람들이 밀려든다. 몰려드는 사람들의 사연은 제각각인지라 현상에 따른 효과 역시 해석자에 따라 다르다. 사람 따라 흘러들어온 돈으로 망가지는 것들에 대한 걱정이 크지만, 덩달아 치솟는 땅값에는 희비가 엇갈린다. 반면, 맨몸뚱이에 예술적 재능과 열정만으로 제주에 눌러 앉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가시리의 지금종은 "제주도의 무신경에 답답하다"고 했을 정도다. 무신경도 무신경이지만,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제주에 스며들었으며,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감조차 잡기 어렵다.

하지만 무관심이 상책일 수 있겠다. 관(官)의 관심과 개입이 되레 예술가에 독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라는 경구는 그럴듯하지만, 지원하는 것 이상 간섭하는 게 관의 속성이다. 예술가들 또한 지원을 위해 자유로움과 ‘발칙한 상상력’을 스스로 접기도 하니 말이다.

앞서 든 C형과 L관장, L씨는 무관심의 영역에서 외로운 작업을 하고 있는 경우다. 고단하고 어렵지만 스스로 택한 길이다. 그들이 왜 낯선 것들에 매달리고 있는지, 과연 어떤 열매를 맺을지, 가늠하긴 어렵다. 확실한 것은 집계(?)될 수 없는 그런 이들이 제주 곳곳에 바이러스처럼 무수히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제 발로 찾아와 드러내지 않고 저 혼자 뭔가 쌓아올리는 이들이 날마다 많아진다는 건 확실히 제주의 복이다. 그들이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는 사회적·자연적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최선의 정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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