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자정께 감귤 경매를 앞두고 서울 가락동 도매시장에서 만난 중도매인은 요즘 감귤 도매시장 분위기를 전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로 25년째 과일 도매를 하면서 경매에 참가하고 있는 권영수(49)씨는 극조생감귤을 마라톤 경기에서 ‘페이스메이커(pacemaker)’에 비유했다.
한 달 후 쯤 출하되는 조생감귤의 선전을 위해 자신이 더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올해 극조생은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오히려 올해 노지감귤 시장 전체 분위기를 흐릴 악재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권씨는 “차라리 극조생 품종을 정리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사실 극조생의 품질 문제는 매년 반복되는 것이어서, 제주감귤 전체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저급품 초반 분위기 ‘싸늘’
이날 새벽 2시부터 시작된 감귤 경매에서도 품질이 낮은 극조생들이 가격 하락의 주범임이 확인됐다.
전통적으로 ‘로얄 사이즈’라는 3~5번과도 4000~5000원으로 곤두박질치기 예사다.
이들 감귤은 예외없이 부패과가 섞여 있거나, 열매 표면이 거뭇거뭇하게 변한 이른바 ‘사비과’가 잔뜩 들어있는 것들이다.
조생감귤이 본격적으로 출하되면서 품질이 전반적으로 크게 달라지고 있지만 시장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이날 농협 가락공판장에서 이뤄진 경매도 분위기가 가라앉은 가운데 시작됐다.
비교적 상품성이 높은 것으로 시장에서 알려진 브랜드를 먼저 경매에 올려 경매사가 연신 호가를 하지만 응찰하는 중도매인이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최근 가라앉은 경락가를 반전시킬 요량으로 경매사는 이런저런 방책을 써보지만 싸늘하게 식은 경매 분위기를 끌어올리기가 여간 벅찬 모습이 아니다.
“요즘 분위기가 이래요. 오늘도 극조생이 많이 나왔지만, 지난 두 달 동안 극조생에 시달린 중도매인들의 마음이 많이 닫혔다고 봐야죠. 그게 경락가에 그대로 반영이 되고 있구요.”
이날 경매대에 올라 연신 호가를 외친 농협 공판장 김정배 경매팀장의 얘기다.
지난달 중순 이후 조생감귤이 출하되면서 품질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극조생 저급품은 수두룩했다.
‘사비과’는 보통이다. 돈을 주고 사 먹으라고 권하기 민망한 ‘비주얼’이 한 두 상자가 아니다. 그래놓고 가격타령을 한 다는 게 오히려 미안한 지경이다.
농협에서 출하한 꽤 유명한 브랜드 감귤도 품질에서 밀려 가격이 엉망이다. 소비자선호가 가장 높은 4번과가 6500원이다.
일부 농업법인과 상인들이 출하한 극조생은 줄줄이 3000~4000원으로 추락한다. 상자 속을 들여다보니 ‘사비과’에 운송과정에서 눌려 으깨진 감귤이 여럿 들었다.
경락가보다는 품질이 양호한 감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가격은 낮을까. 중도매인들의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소비둔화로 인한 적체 물량이 생기면서 나름대로 손실을 줄여보겠다는 발상이다. 감귤 전체 경락가가 힘겨운 반등을 시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조생 본격 출하로 가격 꿈틀
이날 경매는 한 시간 남짓 진행됐다. 경매 후반부로 접어들자 상당수 중도매인이 자리를 떴다. 경매장에 찬바람이 분다. 근근이 경매가 이어지면서 농협 공판장 평균 경락가는 1만원을 겨우 넘겨 1만200원으로 마무리됐다. 전날보다는 500원 올랐다. 그나마 다행이다.
가락동 도매시장 전체 경락가는 이날 1만2200원으로 전날과 견줘 5.3%(800원) 상승했다.
전국 주요 도매시장 가격도 1만1300원으로 5.6% 올라 힘겹게 이틀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경매가 끝난 후 만난 한 중도매인은 “1번과를 상품으로 푸느냐 계속 묶느냐는 지엽적인 문제다. 맛만 좋으면 크기는 걱정할 게 없는데, 본말이 전도된 논쟁을 하는 것을 소비지에서 보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1번과를 소비자들이 선호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다른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맛이 좋다는 얘기일 뿐이다. 생산자나 정책입안자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충고했다.
그는 “최근 체리나 망고 등 수입과일이 홍수처럼 밀고 들어와 ‘국민과일’ 행세를 하고 있는데, 감귤은 천하태평이다. 적정소비량을 보면 얼마를 생산해야 하는지 나올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1번과 규제 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제주매일 신정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