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리워하며 수구초심 한평생"
"고향 그리워하며 수구초심 한평생"
  • 문정임 기자
  • 승인 2014.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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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땅에 아내 묻으러 유골안고 제주 온 재일동포 박남규씨
"나와 너희들의 고향이" 유언…3대 제주 방문해
제주대·탐라도서관 등에 전문장서 1만권 기증

"나와 너희들의 고향이" 유언…3대 제주 방문해
제주대·탐라도서관 등에 전문장서 1만권 기증

"늘 그리웠어요. 전쟁속에 어쩔 수 없이 떠났지만 죽으면 고향에 묻힌다. 언젠간 돌아간다. 가슴 한 켠에 명심하고 살았지요."

문화의 날(11월 3일)을 끼고 일본의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10월 31일, 제주공항으로 할아버지와 자녀, 손자 3대가 들어왔다. 이들은 재일동포 1~3세대. 2년전 사망한 할머니의 유골을 고향 땅에 묻기 위해 어렵게 제주를 찾은 길이었다. 재일동포 박남규씨(88세)의 일가였다.

1926년 제주 함덕에서 3대독자로 태어난 박씨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던 1945년 봄, 목숨을 구하고 공부를 하라는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제주를 떠났다.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는 미군의 손에 넘어가고 일본은 본토 함락에 대비해 제주섬 해안가 곳곳에 특공기지를 설치하고 있었다. 강제노역과 공출로 인한 제주인들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박씨는 상경후 고려대의 전신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를 다니다 도일(渡日), 교토대학 법학부와 법정대학원 졸업하면서 제주로 오려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영영 발이 묶이게 됐다. 다행히 작은 점포로 출발한 사업이 자리를 잡으며 안락한 삶을 살았지만 고향은 쉬 잊혀지지 않았다. 본인과 아내는 물론 다섯명의 자녀 모두 귀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2010년, 드디어 고향 함덕에 가족 묘지를 마련했다. 삼양 등 제주 곳곳에 흝어져있던 친척들의 묘지를 찾아 이장했고, 이번 제주 방문에서는 사망 후 일본 절간에 안치했던 아내의 유골을 가져와 묻었다.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고향에 가족묘지를 마련하고, 물려받은 고향집 한 채를 남겨둔 것은 한 줄의 연을 가지고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이번 제주방문에 아들과 딸, 며느리, 손자, 손녀를 모두 대동하고 온 것은 '나와 너희들의 고향이' 바로 이 곳임을 잊지 말라는 유언이기도 하다.

한편 책을 좋아했던 박씨는 2000년 중반 이후 제주대학교와 탐라도서관 등에 그가 소장하던 전문장서 1만권을 기증하기도 했다.

막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하루하루 긴박하게 돌아가는 일본의 국내외 정세를 살피기 위해 보기 시작한 책이, 평생의 친구가 됐다. 미수(米壽)의 나이에도 아침에 눈을 뜨면 담배 한 개피와 독서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 1만원의 책을 기증하고도 건물 두 개 층이 여전히 책으로 가득하다. 물론, 책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 아낌없이 기증할 생각이다.

지난 2011년, 제주고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발행한 교지 '향목' 20호에 그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곳에서 그는 후배들에게 이 말을 건넸다. "유진무보(有盡無報),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 하되 대가를 바라지 마라"

그는 7일 일본으로 돌아가지만 오래지 않아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고향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을 아무도 몰래 이 네 글자의 사자성어로 대신한 건 아닐까.

인터뷰 내내 그는 난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의 갈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사람은 본명(本名)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어요. 귀화하지 않고, 며느리들을 한국인으로 맞고, 일본인과 결혼했어도 딸들 모두 한국 이름으로 살게 한 것,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내 평생의 과제였지요"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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