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樹德)과 적선(積善)
수덕(樹德)과 적선(積善)
  • 제주매일
  • 승인 201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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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학박사·前언론인 이용길
수덕(樹德)은 덕을 세우는 일, 다른말로 하면 덕을 베푸는 일이다. 덕을 쌓는다는 적덕(積德)과도 같은 말이다. 덕을 많이 쌓고 베풀면서 살라는 의미이다.

덕(德)이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밝고 옳고 크고 착하고 빛나고 아름답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마음씨나 행실’이라고 풀이돼 있다. 온갖 가언(佳言) 미언(美言) 선언(善言) 아언(雅言) 호언(好言)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덕은 좋은 품성으로서, 이것을 일생 행하면서 살라는 뜻일 게다.

덕을 유교적·윤리적 개념으로 보면, 극기(克己-스스로를 이길 수 있는 힘), 박애(博愛-남을 감화시킬 수 있는 힘), 정의(正義-악을 물리치고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힘), 지혜(智慧-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힘), 겸손(謙遜-자신을 낮출 수 있는 힘), 협동(協同-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힘), 용기(勇氣-훌륭한 일을 성취할 수 있는 힘)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덕은 다른 이에게 도움과 은혜를 베풀 수 있는 능력을 이른다할 수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이 되려면, 당연히 자기와의 부단한 싸움을 해야 한다. 덕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꾸준한 노력, 끊임없는 수양과 수련으로 체득해야 한다.

덕을 쌓은 자에게는 사람들이 저절로 추종하게 돼 있다. ‘대학(大學)’에 “유덕차유인(有德此有人) 유인차유토(有人此有土) 유토차유재(有土此有財) 유재차유용(有財此有用)”이라는 글이 있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따르면 땅을 얻게 되며, 땅을 보존하게 되면 재물이 생기고, 재물을 간직하게 되면 이를 유익하게 쓸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재물은 꼭 필요하다. 이러한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덕’. 그 덕을 쌓고 베푸는 일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근본’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적선은 선행을 쌓고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다. 선(善)은 ‘착할 선’자이다. 올바르고 어질고 좋고 훌륭한 것이다. 그래서 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을 ‘선’이라고 한다.

노자는 선 가운데서도 “최상의 것은 물과 같다(상선약수 -上善若水)”고 설파했다. 물은 모든 만물에 이로움을 주면서도 결코 다투지 아니한다. 오히려 겸손해 밑으로 내려간다. 물이 최고·최상의 선임을 보여주는 이유이다.

남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위치라면, 그는 분명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 경쟁 즉, 다툼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을 터이다. 그러나 경합을 수반하는 경우, 그것은 이미 ‘가장 좋은 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된다. 물은 지구상의 온갖 생물에 이익을 주면서도 아무런 각축(角逐)을 하지 않으니, 지고지상(至高至上)의 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선을 지녀야 한다. 어떻게 서로 겨루지 않으면서 선을 갖출 수 있을 것인가. 남보다 낮은 곳, 남들이 싫어하는 처소로도 갈 수가 있어야 한다.

생각은 깊고, 마음은 어질며, 말에는 믿음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덕과 더불어 베풀어야 한다. ‘역경’에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는 글귀가 있다. “착한 일을 쌓고 베풀면 반드시 경사가 뒤따른다”는 덕담이다.

최근 3대가 국회의원인 가문을 기리기 위해 국회도서관에 ‘가족서고’를 마련키로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8선의 할아버지 故정일형 의원과 할머니 故이태영 변호사의 음덕과 적선이 손자 정호준 의원에게까지 미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옛날에, 걸인에게 밥상을 차려줬는데 이 사람이 밥을 먹다말고 놋쇠 그릇을 훔쳐 달아났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주인이 “제값을 받고 팔려면 뚜껑이 있어야 된다”며 뚜껑마저 내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적선을 한 이 덕인(德人)집안은 후대에도 하는 일마다 잘 풀렸음은 물론이다. 충청도의 한 경주이씨 가문에 전해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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