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처리난 악몽…수확 못하고 한숨만”
“또 처리난 악몽…수확 못하고 한숨만”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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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전남·충남 양배추 산지를 가다
양파·콩 농가들 작목 전환으로 재배면적 급증
밭떼기거래 ‘뚝’…계약단가론 인건비도 못 건져

▲ 지난 27일 전남 무안지역 양배추밭을 방문한 제주농협 관계자들이 생육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성만 농협제주본부 경제기획팀 차장, 하희찬 애월농협 조합장, 안원진 애월농협 경제상무.
올해도 양배추 처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전국 최대 생산지인 제주지역의 재배면적이 늘어난 데다 기상호조로 작황이 예년에 비해 좋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남 무안과 진도, 충남 서산 등 다른지방 주요 산지의 양배추 작황도 제주 못지않게 좋은 것으로 나타나 지난해 겪었던 처리난 악몽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7일과 28일 전남 무안과 충남 서산 등 양배추 주산지를 방문한 하희찬 애월농협 조합장과 도내 농협 관계자들은 올해산 양배추 처리 전망이 어둡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하 조합장은 “차라리 자연재해가 발생해 생산량이 줄었으면 할 정도로 작황이 좋다. 제주나 다른 지방 모두 양배추 처리 대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지난 27일 도내 농협 관계자들이 찾은 전남 무안농협 해제지점의 김성환 차장은 “올해는 포전거래(밭떼기거래)가 아예 없다”는 말로 심각성을 에둘러 표현했다.

상인들과의 계약재배 단가도 올해는 200평당 90만원으로 작년 120만원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는 게 김 차장의 전언이다. 이마져도 파종 당시 얘기고 요즘은 현금 30만원으로 계약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파와 콩 재배농가들이 가격하락으로 양배추로 작목을 전환하면서 재배면적은 40%나 늘었다.
일부 양배추 밭에 연작 피해인 ‘뿌리혹병’이 발생한 것을 빼면 작황이 나무랄 데 없이 좋다고 한다. 생산량이 급증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농가와 계약했던 상인들 가운데 일부는 아예 연락을 끊은 경우도 허다하다고 김 차장은 말했다.

이 지역 농가들의 고민은 비싼 인건비 탓도 있다. 숙련된 인력의 경우 파종은 15만원, 수확은 20만원 수준이다.

200평 양배추를 재배하는 데 드는 생산원가는 40만원인데, 현재 계약단가로는 수확하면 할수록 적자가 뻔하다. 산지폐기를 고민하는 농가들의 늘고 있다고 한다.

무안군 해제면 신정리에서 만난 양배추 농가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요즘은 차라리 로타리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수확해봐야 인건비만 지출해야 하는데, 그럴 바에는 갈아엎는 게 속이라도 편할 것 같다”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왔다.

하 조합장은 “전남 지역은 토양이 좋아 양배추 크기가 제주산에 비해 두 배 가량 크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튿날 찾은 충남 서산지역도 사정은 비슷했다. 서산농협 유영만 경제상무는 “강원 지역 양배추 처리가 늦어지면서 이 지역도 예년에 비해 수확이 늦어지고 있다”면서 “작년 이맘때 90% 가량 포전거래가 이뤄졌는데, 올해는 60% 안팎에 그치고 있다”고 전했다.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포전거래 계약을 마친 경우도 수확을 늦추는 곳이 많다고 유 상무는 말했다.

유 상무는 4년 전 이 지역에서도 산지폐기가 있었다며 농가들 스스로 생산량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려는 노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지폐기 정책은 경쟁력 측면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어서 시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 최대 산지인 제주에서 본격 출하되는 시점과 겹칠 경우 가격은 더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다른지방 양배추 농가들의 고민이 가을과 함께 깊어지고 있다.  [제주매일 신정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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