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수 콘서트
국민가수 콘서트
  • 제주타임스
  • 승인 200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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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른 오월도 이제 중순에 접어들었다. 오월 달은 청소년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어버이와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달이다. 학교나 기관 사회단체에서 나름대로 뜻 깊은 행사계획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하여 내일의 주인이 될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준다. 뿐만 아니라 스승과 어버이를 공경하며 기쁨을 드리는 일에도 신경을 쓴다.

 이렇게 오월 달은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밝아질 수 있는 기운을 축적하는 달이기 때문에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의미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즈음 부모에게 효도의 일환으로 즐거운 자리에 모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도록 孝 콘서트를 열고 열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래서 나도 몇 해 전 효 콘서트를 관람했던 일이 생각난다.

 국민가수 이미자 씨의 노래 40년 인생 60년 ‘효??콘서트를 제주도문예회관에서 보았다.
 큰 아들이 마련해 준 입장권을 가지고 집 사람과 같이 갔다. 사실은 콘서트에는 한 번도 참석해보지 않아서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백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분이라고 하는 이미자 씨의 콘서트여서 좋은 기회다 싶어 참가하였다.

 저녁 7시부터 공연하는데 서둘러 6시 반 경에 입장하였다. 극장 안을 빙 둘러보았다. 빈 좌석이 많아 좌석이 다 찰까 하는데 관심이 깊었다. 효도의 기회를 제공하는 행사의 하나인데 자녀들이 얼마나 정성을 보여 많은 분들이 참여할 것인가에 관심이 가는 것이었다. 공연 시작 시간이 다 되어 갈 때 좌석은 거의 꽉 찼다.
 감귤을 따다 황급히 달려왔다, 자녀의 적극적인 권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왔다 하며 주변 사람들이 소곤소곤 이야기 하였다.

 내 자리에서 몇 줄 앞자리에 온 어떤 아주머니는 급히 와서 앉느라고 접힌 의자를 펴지 않고 앉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주위 사람들은 ‘아이고??하면서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본인이 겸연쩍어 웃는 바람에 안심이 되어 주위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국민가수 이미자 씨는 대단한 가수라 생각되었다. 2회 연속 공연으로 장장 4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으니 말이다. 물론 중간에 1시간 정도는 쉬었다고 하지만, 그 원기에 놀랐다. 노랫말을 어떻게 다 기억하여 부르는지 그 또한 놀라웠다.

 이미자 씨는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래 「동백아가씨」,「섬마을 선생님」,「기러기아빠」,「흑산도 아가씨」,「아씨」,「황혼의 블루스」,「노래는 나의 인생」등 주옥같은 목소리로 국민과 애환을 함께하였다. 그러면서 그 분은 <엘레지의 여왕>, <살아 있는 트로트의 역사>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아왔다. 전쟁의 상흔에서 채 깨어나지 못한 1960년대에 막 태동한 근대화,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겪는 서민들의 마음고생을 절제된 슬픈 선율로 달래주는데 온 청춘을 바치기도 하였다.

 실로 그 분은 놀랍게도 40여 년 동안 2,069곡, 560여 장의 음반을 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내고 곡을 취입한 가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가정적으로는 주부로, 아이 엄마로, 아내로 1인 4역을 하면서 눈물겨운 고충도 많았다 한다.
  나는 많은 역경을 무릅쓰고 국민가수로 굳건히 자리한 그 분에게 축하와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김 광 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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