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농의 꿈이 영글다
오늘(23일)은 음력 9월에 드는 24절기의 하나로서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상강이다. 상강은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들며, 이때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특히 농사력으로는 이 시기에 추수가 마무리되는 때이기에 겨울맞이를 시작해야 한다.
이처럼 제주지역에서는 하우스 감귤과 노지 감귤 수확이 한창이다.
그래서 감귤 농가는 이맘때가 가장 바쁘다.
하지만 박형득씨는 감귤 수확 등 바쁜 일상을 제쳐놓고 다른 사람들의 농장을 둘러보기 바쁘다.
농장을 둘러보며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코로 냄새를 맡아보고, 입으로 먹어보기도 한다.
그의 농수산물판매장인 ‘율이네 미깡집’에서 선보인 진선미 세트가 전국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자체 물량으로는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상인으로 변해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의 농장을 찾아다니는 것.
맛이 좋고 크기가 적당한 상품을 사전에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이처럼 나라간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가의 현실에서 이 30대의 젊은 농업인인 박형득씨는 7여 년 동안 양식업체에서 습득한 기술을 뒤로한 채 새로운 영농방식과 판매 기법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 부농의 꿈을 오늘도 실현하고 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농사를 시작했고 지금도 제 명의로 된 밭은 없어요. 하지만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통해서 한해 조수입은 1억원이 넘어요. 부농의 꿈에 한발 다가서고 있는 거죠.”
23일 서귀포시 효돈동의 한 감귤 농장에서 박형득(34)씨를 만났다.
그는 감귤 농사에 대해 발상의 전환을 한 30대 젊은 농민.
그의 명의로 된 농지는 물론, 부인의 명의로 된 농지도 없다.
2년 전에 이곳 농장 2600㎡(약 800평)와 서귀포시 서귀동 이중섭 거리 인근에 있는 ‘율이네 미깡집’ 농수산물판매장을 빌린 게 전부다.
초보 농사꾼인 박씨는 모든 게 어설펐다.
한탄만 하기에는 너무 젊다.
가진 게 없다고 해서 실제로 크게 불리한 것도 아니다.
배움이 고픈 그에게는 모든 것이 스승이었다.
농장의 풀벌레 소리, 하늘에 떠다니는 비구름, 길섶의 잡초도 뭔가를 가르치는 것 같았다.
박씨는 “제 경험은 바다 속인데 물 위에서 농사를 지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며 “작은 기술이라도 배워보고자 친인척 농장과 농업기술센터 등을 수없이 찾아다니며 눈동냥, 귀동냥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결국 그는 농사일을 시작한지 불과 2년 만에 한해 조수입 1억원을 넘겼다.
국세청이 발간한 ‘2013년판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2년 소득을 기준으로 전체 연말 정산 근로자 1576만명 가운데 총 급여액이 1억원을 넘는 회사원은 41만5000명으로 회사원 100명 가운데 2.6명이 억대 연봉자인 셈이다.
이들의 평균 급여액은 296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박씨는 일반적으로 신사복이나 와이셔츠 차림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직업 계층을 가리키는 ‘화이트칼라(white-collar)’보다 많이 버는 농업인이 됐다.
박씨는 “지난해에 25평형 아파트를 장만하면서 빚을 내, 여유가 조금 없지만 부농의 꿈을 현실로 이뤄가고 있다”고 말했다.
▲억대 조수입 태풍 볼라벤 덕분
그의 억대 조수입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록적인 강풍을 만들어 낸 2012년 태풍 볼라벤 덕분이다.
박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양식장에서 참다랑어를 기르던 인재 중의 인재였다. 양식장에서 일을 한 것도 만 7년이 넘는다. 하지만 2012년 태풍 볼라벤 등 강력한 태풍이 잇따라 제주를 강타하자 위험하다는 가족들의 만류에 결국, 양식장을 나왔다.
양식장을 나온 뒤 한 집안의 가장으로써 생계를 위해 무작정 감귤 농장을 임대,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눈동냥과 귀동냥으로 배운 것을 실전에 그대로 옮겼다.
‘2분의 1’ 간벌과 얕은 배수로, 토양 피복, 관수 시설 설치 등으로 고품질 감귤 생산 기반을 조성했다.
재배 환경도 개선해 수확 작업을 할 때의 노동력을 약 20% 정도 절감했다.
그렇게 혼자 재배와 수확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학창시절에도 쓰지 않던 일기를 매일 쓴다”며 “농사를 지으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자신 만의 ‘비밀 노트’에 그대로 옮겨 적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해조수입 1억원 훌쩍
최대한 재배 면적 넓혀
싼 가격 상품 판매 노력"
"감귤농사 시작 2년만에
한해조수입 1억원 훌쩍
최대한 재배 면적 넓혀
싼 가격 상품 판매 노력"
▲판로 개척은 파격적 혼한 세트로
그는 상품성이 높은 감귤을 생산했지만, 구체적인 판로가 없어 애를 먹었다.
상인들이 농장을 왔다갔지만 소비자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을 제시했다.
박씨는 생산 문제보다 판로 개척이 시급하다고 판단,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또다시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하고 각종 문서를 뒤졌다.
머리를 맞댄 끝에 내린 결론은 ‘분산 출하를 통한 출하시기 연장, 직거래’였다.
그래서 그는 농사만 지을 것이 아니라 농사지은 것을 선물용으로 포장해 판매하기로 했다.
즉, 1차 산업인 농업에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을 결합한 이른바 6차 산업으로 경쟁력을 키워 소득을 보자는 것이다.
그는 걱정이 많았지만 잃을 것도 없는 그였기에 첫 시도에 나섰다.
서귀포시 서귀동 이중섭 거리 인근에 농수산물판매장인 ‘율이네 미깡집’을 차렸다.
낮에는 농장에서 작물을 키우고 저녁에는 포장 방법을 강구했다.
그 결과 이전에 보지 못했던 파격적인 혼합 세트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진선미’ 세트. 진선미 세트는 한라봉과 천혜향, 레드향으로 구성했다.
지난해 설 명절 세트로 첫 선을 보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국으로 소문이 나 주문이 쇄도했다.
직거래 회원 명단도 처음 20~30명 수준에서 현재 600~700명으로 크게 늘었다.
덩달아 그의 수익도 2년 만에 세 배로 뛰었다.
‘진선미’ 세트는 ‘율이네 미깡집’에서 최고의 판매 수익을 가져다주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아직 새로운 포장 구성에 익숙해지지 않은 소비자가 많지만, 한번 구매를 하면 세 가지의 다른 향과 맛에 빠져 재 구매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다소 가격이 높더라도 다양한 품종을 소량으로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읽어낸 것이다.
박씨는 “가방이나 옷, 시계에만 명품이 있는 게 아니라 감귤에도 명품이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라며 “높은 가격인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소비자들이 구매를 해줘서 상품을 개발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배 토지 규모와 수확량이 늘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점차 늘어난다는 사실은 부러운 대목이다.
소득이 늘어나자 어린이집 교사였던 부인 송민정(00)씨도 현재 농수산물 판매점에서 남편의 일을 도우고 있다.
부인 송민정씨(32)는 “제철이 아니지만 벌써부터 진선미 설 명절 선물 재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며 “남편이 재배하고 제가 판매하는 직거래인 만큼, 재구매 고객에게 가격을 깎아주거나 덤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씨는 “제 목표는 모든 사람들이 제가 개발한 상품을 먹도록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능력이 닿는 한 재배면적을 넓혀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해 연간 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제주매일 고권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