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부 고유권한 '침해'
'의원사업비'도 노골화

제주도의회가 ‘협치’를 핑계로 원희룡 도정의 발목을 잡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원희룡 지사가 ‘협치’를 이유로 지금까지 없었던 인사청문회 권한을 도의회에 준 상황에서, 집행부(제주도)의 고유 권한인 예산편성까지 ‘협치’를 들먹이며 요구해 도민사회의 지탄마저 우려된다.
구성지 제주도의회 의장은 14일 오전 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예산의 협치시대를 열자”고 촉구했다.
구성지 의장은 이날 “도정과 의회가 협의해 투명하고 효율적인 예산운영을 만들어 내자는 취지”라며 (집행부가) 예산편성 지침을 만들기 이전에 도의회와 사전 협의 할 것과 중기지방재정계획 수립 역시 사전에 의회와 협의할 것을 요구했다.
또 “예산이 탑-다운제에서 말하고 있는 배분에 있어서 일정 규모 범위내에서 의회가 민생현장의 소리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일종의 ‘의원 재량사업비’ 배분을 주장했다.
구 의장은 특히 “의회와 집행부 간 주어진 역할 내에서 예산의 권한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협치의 물꼬를 트는 길”이라며 “원 도정이 모든 분야에 협치를 내세우고 있고 이게 협치다. (집행부가) 신중한 검토를 통해 받아들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예산편성권은 집행부의 고유 권한이고 심의권은 의회의 권한으로 분류된 상황에서 의회가 ‘협치’를 내세우며 감사원 지적에 의해 사라진 ‘재량사업비’를 요구하고 이를 위한 예산편성권까지 함께 갖자는 것이어서 이는 구 의장의 과도한 욕심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제주도는 이날 구 의장의 기자회견 이후 ‘예산편성 관련 도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예산편성권 공유에 대해 불가 방침을 밝혔다.
박영부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이 도청 기자실에서 회견을 갖고 “제도적으로 편성권과 심의권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재량사업비’는 과거 관행이었지만 감사원 지적에 의해 2012년부터 폐지됐다”며 “도의회의 예산편성권 공유 요구는 예산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어서 수용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어 “제주도의 1년 예산중 정해진 사업비를 제외한 가용재원이 4000억~5000억원으로 이를 도민 민원성 사업에 분배해야 하는데, 도의회가 요구하는 800억원(의원 1인당 20억원 재량사업비)은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고 토로했다.
이는 집행부와 도의회 간 예산심의를 앞둔 상황에서 힘겨루기로도 비쳐질 수 있지만, 도의회의 요구 자체가 무리한 것이어서 시민단체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시각이다.
제주경실련 좌광일 사무처장은 “의원들의 재량사업비가 지역구 챙기기 예산으로 전락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의원 몫으로 20억원을 요구하는 것은 예산편성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도의회가 불합리한 요구를 하고 이를 문제삼아 보복성 예산삭감 등으로 이어질 경우 ‘도민의 대의기관’인 의회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도의회는 이날 오후 ‘예산협치제안에 따른 제주도정의 반박성명에 대한 입장’을 내놓고 “앞으로 예산과 관련, 도의회에서 어떤 심의의결이 되더라도 의회의 책임을 탓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향후 첨예한 갈등을 예고했다. [제주매일 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