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긍정론
'빨리빨리' 긍정론
  • 제주타임스
  • 승인 200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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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람, 미국사람, 한국사람 셋이 걸어가다가 앞에 지어진 큰 건물( 63빌딩 정도라고 하자)을 보고, 미국사람이 중국사람에게 묻는다. “당신네 나라에선 저 정도 건물을 짓는데 얼마나 걸리오?” 중국사람 “저 정도면 아마도 10년은 족히 걸려야...” 미국사람은 중국사람을 업신여기듯 “우리 미국에선 5년이면 놀면서도 짓는데...”하고 폼을 재며 한국사람에게도 묻는다. 한국사람 왈 “어? 어제는 없었는데?”

사실 한국사람들은 참 빠르다. 외국인들은 자기 나라를 관광하는 한국인의 민첩성에 혀를 내두르며 신기해한다. 안내자의 ‘빨리빨리‘ 외치는 소리에 맞춰 한국사람들이 지키는 행동과 질서는, 깃발 따라 줄을 서는 세계 최고라는 일본인들보다 훨씬 빠르고 정연하다. 그런데도 외국인들은 별로 안 좋은 낯으로 부정적 입장에서, 이 ’빨리빨리‘를 한국인을 대신하여 부르는 경망스러움을 보인다.

‘빨리빨리’ 정신은 조급성이 아니라 근면성이다. 사계절이 뚜렷하나 철의 바뀜이 쏜살같아 절기에 맞춰 농사를 지어야 하는 우리 민족은 시원한 정자에 누워 ‘만만디’를 노래 부를 수 없었다.
더욱이 추수 때까지 백 번에 가깝게 사람의 눈맞춤과 손길과 정성을 먹고 자라는 벼농사를 주로 했던 우리에게 이 ‘빨리빨리’는 밤을 낮 삼아 살아온 일상사요, 운명이었다.

하루 이틀만 삐끗하고 곁눈팔다 넘기면 일년 농사 망치기 일수인데, 어디 할 일 않고 먼산바라기를 할 수 있었는가. 오죽하면 농번기 때 ‘장인을 만나도 엉덩이로 절한다.’는 속담이 생겼을까. 이 ‘빨리빨리’ 앞에 ‘더’를 몇 번 더 붙여도 모자라게 살았던 한국인의 근면성을 우리 국민 중에서도 조급성으로 왜곡하며 자기폄하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이니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전 12월에 태국을 가보고 놀란 적이 있다. 논두렁도 없이 넓게 펼쳐진 논들, 적당한 넓이의 논마다 제각각이었다. 갓 모가 심어진 논, 적당하게 자란 논, 이삭이 팬 논, 추수가 시작되는 논, 추수가 끝난 논, 노는 논 등등 속된 말로 오야 마음이다. 일년 내내 여름인데 무슨 걱정이 있어 시간에 매달려 발바닥이 닳도록 빨리빨리 뛰겠는가.

한국 기업들이 세계 각지에서 시행하는, 그들이 넘보지 못하는 대형 토목, 건설, 플랜트 공사를 보면 으레 세계 최고, 최대, 최단이란 수식어가 당연한 듯 붙는다.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창조해낸 건물, 교량, 항만, 도로 등이 어디 한 둘일까마는 그 중 최근에 발표한 어느 기자의 해외기획 리포트 중 한 부분을 예로 보자.

‘H건설은 이란 사우스파 가스 처리 4-5단계 공사를 세계 시공 사상 최단기간인 34개월만에 완공하였습니다. 공사금액 16억불, 우리 돈으로 1조6천2백억원에 달해 단일 플랜트로는 세계 최대입니다. 건축면적 1만여 평, 동원인력도 20여개국에서 하루 최대 만8천3백명, 연인원 950만명, 가히 세계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공장은 페르시아만 해상 사우스파 가스전에서 105km의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끌어온 천연가스를 정제 처리하는 시설입니다.’ 

이 모든 게 ‘빨리빨리’ 정신, 곧 성실성과 근면성이 이루어낸 성과다. 세계 곳곳에서 외국인들이 예상 못한 기적 같은 공사들을 최단기간에 마쳤지만 아직까지 나라의 체면을 구길만한 하자가 발생하였다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매사의 처리는 정확하되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빨리 도는 세상에 맞추려면, 기거나 걷는 것보다는 뛰는 게 제격이다. 단지 쓰러지거나 빠지지 않도록 발을 챌 돌부리는 피해가고 도랑은 건너뛰면 되는 것이다.

부 태 림<성산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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