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벌초는 아름답다
제주벌초는 아름답다
  • 제주매일
  • 승인 2014.08.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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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종헌(NH농협은행 순회감사)

해마다 음력 8월이면, 산과 들에는 예초기로 무장한 벌초객을 쉽게 볼 수 있다. 추석을 맞아 묏자리에 무성히 자란 잡초를 제거하고 조상의 묘를 돌보기 위한 목적이다. 벌초를 할 때에는 야생진드기, 말벌, 뱀 등 온갖 위험들이 있지만, 조상을 생각하는 우리네 마음을 멈추진 못한다. 특히 제주에서는 벌초에 대한 정성이 그 어느 지역보다 강하게 드러난다.

추석보다 벌초
추석차례에는 참석하지 못해도 벌초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제주의 오랜 풍습이다. 음력 8월 초하루가 되면, 도민들은 물론이고 전국에 흩어져있던 친척들이 벌초를 위해 산소를 찾는다. 벌초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은 벌금을 부담하거나, 배우자 혹은 자녀들이라도 보내 일손을 더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제주로 향하는 벌초객을 위해 항공사들은 특별기를 편성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 교포들까지 벌초를 위해 고향 제주를 방문할 정도다. 어디 이뿐인가. 학교들은 임시 휴교일로서 ‘벌초 방학’을 실시하여 학생들의 벌초 참여를 독려하곤 했다.
그렇다면 왜 제주는 유독 벌초를 중요하게 생각할까? 벌초(伐草)라 함은 말 그대로 조상의 묘에 있는 풀을 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벌초를 단순히 묘를 정리하는 것이 아닌 가족행사로 생각했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발생한 ‘괸당’이라는 혈족중심의 문화가 벌초 역시도 가족애를 다지는 중요한 풍습으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제주에서는 벌초가 끝나면 무덤에 술도 올리고 묘 주변에서 준비해간 음식을 함께하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담소를 나눈다.

사라져가는 벌초문화
그리고 아이들은 벌초를 통해 자신의 가족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훗날 조상들을 모시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처럼 제주의 맥을 잇게 하는 벌초는 반드시 간직해야 할 문화라 하겠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주의 벌초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실제로 10년 전 제주 전 지역에서 실시되었던 ‘벌초방학’이 올해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또한 직접 벌초를 가지 않고 벌초대행업체에 조상의 묘를 맡기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벌초를 위한 특별기나 일본 ‘괸당’의 제주 방문은 이미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는 달라진 제주의 장례문화 때문이다. 제주도는 전통적으로 조상을 가까이 모시는 풍습 때문에 매장문화를 지켜왔다. 하지만 지난 2012년의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제주의 화장률은 54.8%로 장례방식 중 1위를 차지했다. 2011년 처음으로 매장률을 역전한 이래 화장률은 전국 1위의 기세로 증가하고 있다.

제주벌초는 무형유산
전국적인 장례문화 변화 추세가 영향을 미친것도 크겠지만, 핵가족화로 산소 관리의 어려움이 늘어나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벌초를 통해 확인하던 가족애와 조상에 대한 사랑도 함께 줄어드는 것 같아 씁쓸하다.
 벌초는 예나 지금이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힘든 풍습이다. 하지만 벌초를 가족들과 함께 모이고 즐기는 연례축제로 생각한다면 힘든 것은 잠깐일 것이다. 조상님과 가족들을 위해서 제주만의 벌초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기억하는가? 과거 제주에는 농번기에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늦봄에 보리방학, 겨울에는 감귤방학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없어진 풍습이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것이 벌초방학인데, 이마저도 잃는다면 제주도의 정체성은 사라질 것이다.
 제주의 벌초는 가족의 결속을 촉진하고 정체성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점에서 최근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등재된 김장문화와 다를 것이 없다. 명맥을 잘 유지하여 ‘제주의 벌초문화’로 무형유산 등재의 꿈을 꾼다면 지나친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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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은 2014-09-02 09:58:50
같은 생각입니다. 옛날에는 음력 8월 초하루면 학교에선 벌초방학을 하고 친족들과 오순도순 모여 조상의 묘에 벌초를 하는 풍습이 요즘은 시들어 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기회에 형제자매 친족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가족들과 결속을 다지는 일이 참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