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피제 신부 기념 사업회(상임 박승준)는 지난 9일 오전 10시 제주시 한림읍체육관 회의실에서 ‘제주를 사랑한 푸른 눈의 신부’ 이야기 경연이 열렸다.
행사장에는 임피제 신부를 비롯해 그를 기억하는 100여명의 지역주민이 자라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2시간여 동안 당시를 회상하며 울고 웃었다.
당시 성 이시돌 의원에서 간호사일을 했던 김수열씨는 “지난 세월 신부님과 함께 하며 저 개인적으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 진료 차트에는 자주 'F(Free)'라는 표시가 자주 등장했다”면서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료비도 약값도 받지 말라는 싸인 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병원 엠브런스를 운전하던 장창두씨 역시 “사랑을 배웠다”고 말했다.
정 씨는 “당시 병원에 함께 있던 엔더 수녀님과 가난한 환자들의 집을 돌며, 치료와 청소 등을 해주는 모습이 떠오른다”면서 “그 사랑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간직하고 살고 있다”고 전했다.
병원 사업 외에도 임피제 신부는 고향에서 돼지(요크셔)를 들여와 제주에 양돈 사업의 뿌리를 마련했다. 사업초기 돼지에게 줘야할 사료를 주민들이 먹어 비육이 되지 않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양돈 사업 초기 신부님과 함께 일했던 신부삼씨는 “당시 고구마 전분껍질을 갈아 밀 껍질 가루와 섞어 만든 ‘범벅’이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던 시절”이었다며 “옥수수를 돼지 사료로 보급했더니 알맹이는 사람들이 먹고, 껍질만 돼지를 먹여 비육이 안 됐던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신부님이 돼지를 키우면 자가용도 탈수 있다고 했는데 믿지 않았다”면서 “목장 근무 후 500마리를 분양 받아 지금은 4500마리의 양돈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4H운동 초기 신부님과 함께 했던 남상인씨는 “당시 신부님의 복장은 사제복이었지만 신발은 워커를 신고 계셨다”며 58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남 씨는 “처음 도입된 요크셔 이후 다양한 품종을 도입하면서 지금에 제주양돈을 만든 것이 바로 신부님”이라며 “특히 4H 운동 성공은 훗날 새마을 운도의 모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25세 나이에 신부님을 처음 만난 이봉선씨는 당시 양털 스웨터를 만들었던 한림수직 초기 5명 중 유일한 생존자다.
신부님과 45년 동안 일을 했다는 이 씨는 “일 할 것도 먹을 것도 없던 그 시절 제주의 많은 아줌마·아가씨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줬다. 그들을 살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들과 함께 자리한 임피제 신부는 정작 “저 자신은 별로 한 게 없다”고 말했다. 임 신부는 “먹을 게 없었던 시절인데도 저에게 계란을 가져다 준 주민도 있었다”면서 “여러분이 저를 이렇게 기억해 주신 게 감사하다.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사제로 제주에 부임한 임피제 신부는 지난 60년간 제주에서 선교활동과 축산, 의료, 교육, 복지활동 등을 펼치며,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한림읍 금악리 황무지를 이시돌목장을 변화시키고, 농민들에게 가축을 기르는 법을 가르치는 등 자립기반도 마련했다.
이시돌목장은 현재 비육사업, 낙농사업, 경주마 사업 등을 통해 얻은 그 수익으로 이시돌요양원·호스피스 병원, 청소년 수련관 등 사회복지사업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