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엽관주의는 시행과 더불어 적잖은 폐단이 노출되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수의 공무원이 경질되어야 했고, 이로써 행정의 계속성과 일관성에 차질이 드러났다. 무능한 자들도 단지 선거운동을 잘했다는 대가(代價)로 공직을 맡다보니 행정능률의 저하를 초래하였다. 공정한 업무의 이행과 국민에 대한 봉사보다는, 자신을 채용해준 정당이나 상관에게만 복종하는 부작용이 빚어졌다. 수많은 선거공신들을 위해 불필요한 ‘자리’를 증설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재정의 낭비 또한 극심하였다. 결과적으로 공익(公益)을 멀리하고 사익(私益)에만 몰두함으로써, 공직사회에 매관매직과 기강문란 등의 부도덕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마침내 이 제도에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 제20대 대통령 가필드(재임 1881.3.4~1881.9.19)가, 공직에 발령받지 못해 불만을 품고 있던 정당원에 의해, 취임초기 암살을 당하고만 것이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실적주의(merit system)’가 본격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미국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公務擔任權)을 가진다(헌법 제25조)’는 명문규정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는 엽관주의가 얼른 수긍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선거싸움에서 이겼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기본적 인권으로 담보되고 있는 공무의 담당·집행권을 집권측이 독식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실적주의를 인사행정의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다. 실적제도는 ‘모든 국민에게 그 어떤 차별도 없이 공직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 개인의 능력과 자격·실적을 중요시하며,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고, 공무원의 신분과 권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요즘 인사와 조직개편관계로 원 도정(道政)에 대한 이야기가 무성하다. 취임한지 겨우 한 달이 지난 시점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 어떨까. 왜 ‘밀월(蜜月-honeymoon)’이라는 낱말도 있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관리에 관한 한, 분명히 다짐해두어야 할 점이 있다. 엽관제가 필경 폐해만 있는 제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총리와 장관을 임명토록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통치자의 정치철학과 정책을 제대로 반영하고 실행해 줄 수 있는, 능력과 동지(同志)적 신념을 겸비한 인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 아닌가. 이것이 바로 ‘엽관제’의 장점인 것이다.
도지사역시 마찬가지다. 자치단체의 수장으로서 시책과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공약과 소신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서는, 호흡과 손발이 맞는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협치(協治)와 소통도 좋지만, 여기에 크게 얽매이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자승자박은 절대 금물이다. 당초 구상하고 의도했던 그대로 ‘원(元)대한 이상과 포부’를 힘껏 펼쳐 보이라. 이것이 도민들의 기대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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