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는 “아빠, 성적표 나왔어, 한 번 봐” 그런다. 자랑하고 싶은 아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끝까지 보지 않았다. 흔들리기 싫었다. 내 성격으로 성적표를 보는 순간 잔소리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전체 석차가 불만족스럽거나 특정 과목이 부족하거나 여하튼 걱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아이의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부모 마음이 다 그렇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 공부를 잘 해야 촉망받고 선호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기며 학벌위주의 사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인생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말은 그저 위로일 뿐이다.
우리 공교육시스템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아 학교든 부모든 모두가 대학수능체계에 몰두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문제는 우리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게 하는 데에 있다. 지식보다는 지능발달에 우선을 두어야 할 유치원·초등교육에 음악미술보다는 영어수학이 먼저이고, 초등학교 학원가에 음악미술이 사라지고 있다.
신임 교육감님이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셨다. 평준화고 확대와 읍면지역 일반계고의 발전을 꾀하는 고입제도 개선방안에 대해 하시는 말로 이해한다. 우리는 그 동안 아이들에게 세상을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제대로 가르쳐 주기보다는 일치감치 성적순으로 가야할 학교를 서열화하였다. 아직까지 자신의 잠재력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잘못 설정된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우량의 낙인을 발부해 왔다. 제주 사회에 제대로 쓰일 인재가 많아지게 할 것이란 점에서 고입제도의 개선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공부를 잘 하든 못하든 자식에 대한 부모의 걱정은 끝이 없다. 인서울 신드롬에서 벗어나자. 정말 아꼬운 우리 아이들을 굳이 서울에 보내고, 외국에 보낼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난, 우리 아이들에게 제주에 남아서 제주의 가치를 빛내 달라고 말한다. “제주는 화산의 보고야”, “제주 곶자왈의 동식물을 연구해 보면 어떨까?”, “미래는 해양시대야. 우린 아직 바다 속을 너무 모르고 있어” 라고.
미래는 슬로우 산업이다. 제주관광의 다변화를 꾀하려면 우리 제주는 영어수학보다는 음악미술이다. 남들이 음악미술을 무시하고 있는 지금이, 제주로 둥지를 옮기는 문화예술인이 늘고 있는 지금이 바로 우리가 음악미술에 집중할 때이다. 미래 제주관광 산업의 핵심 콘텐츠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세계최고 수준의 문화예술 공연, 디자인, 스토리 기획이다.
난 아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서야 정작 아버지로서 해줘야 할 말은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대신해 살아갈 아들에게 공부하라는 말보다 정의로운 삶, 스스로 행복한 삶, 남을 배려하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평소의 삶 속에서 함께하며 말해주고 느끼게 해 주었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길이 바로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포기하고 아이의 재능을 함께 찾아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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