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심 끝에 용기를 내서 명함을 만들었다.
호(號)와 이름, 전화번호·전자우편주소가 전부이다. 다만 배경 사진으로 산방산(山房山)을 넣었다. 보는 사람마다 고향이 ‘사계리’라는 것을 알아봐줘서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명함은 자신이 누구임을 소개하는 일종의 홍보물이다.
특히 처음 만나 인사를 하는 경우에는, 필수품이라 할 만큼 중요한 것이 명함이다. 명함은 프랑스의 루이 14세(재위 1643~1715)시대에 쓰이기 시작하여 점차 요즘과 같은 인쇄된 것이 나오면서, 사교가에 널리 이용되었다고 한다.
명함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중국 청나라 말기 최고위직 정치인이었던 이홍장(1823~1901)이 방미(訪美)했을 때의 일이다. 미국정부 관리들이 서로 인사를 하면서 조그만 종이를 교환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수행원에게 그 쪽지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라 했더니, 본인의 신분을 밝히는 ‘명함’이라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명색이 대국(大國)사신인데 체통 없이 작은 종이쪽지를 사용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단 한필에다 ‘북양대신 이홍장(北洋大臣 李鴻章)’이라고 대서특필하게 한 다음, 그 커다란 천의 네 귀퉁이를 비서들에게 잡도록 하여 대통령관저로 들어갔다는 얘기이다. 이쯤 되면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초대형 명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명함에는 일반적으로 성명·주소·직업·신분·전화번호 등을 적는 것이 관례이다.
그런데 요새는 명함도 많이 진화해 다채로운 색상과 디자인에다, 기재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다. 기본적인 사항은 물론, 적은 공간에 학력·경력과 직책·업무 등을 앞뒤로 빽빽하게 새겨 넣은 자기 과시용 명함, 아름다운 풍경과 그림을 천연색으로 박은 화려한 명함, 자신의 얼굴이나 가족사진을 넣은 소박한 명함 등 각양각색이다. 받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얼굴’이 들어있는 명함에 호감이 간다. 그것도 살짝 웃는 용모(容貌)는 친밀감을 더해 준다. 인상에 오래남고 기억할 수 있는 명함, 거기에다 예쁜 시어(詩語)나 신명나는 구호(口號), 격언·명언이나 안내문을 살짝 덧붙이면 더욱 좋을 터이다.
얼마 전 서귀포의료원에 문병을 간적이 있었다. 우연히 고향후배를 만났다. 서귀포경찰서 교통조사계 소속 한만보 경사. 오래만인지라 향후 연락을 위해 명함을 받았다. 귀가한 뒤, 명함 이면을 보니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여러분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신속한 사고처리를 위하여 다음 서류를 준비해 주십시오.” ①진단서 ②견적서 ③운전면허증 ④주민등록증 ⑤자동차보험가입 사실증명서. 육체적 고통과 마음고생이 심할 피해자들에게 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 문구(文句)이겠는가.
칭찬해주고 싶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물었다. “한(韓)경사만 이런 명함을 가지고 있는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동료 경관들이 비슷한 명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경찰의 대민(對民)서비스가 크게 향상되었다고는 하나, 이처럼 친절하게 민원을 처리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비록 명함이 조그만 ‘종이쪽지’에 불과하지만, 그 쓰임새에 따라서는 상상외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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