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선비란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한자의 사(士)는 ‘지식과 인격을 갖춘 인간’이다. 선비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더라도 학문과 도리를 연마하고 후진을 가르치는 것을 본연의 자세로 삼았다. 끊임없는 학문연구와 수련으로 자질을 갖추고 인간의 당연한 도리를 체득, 이를 통한 인격적 성취에 그 목표를 두었다. 선비는 세속의 명리를 따르거나 시류에 영합하지 않으며, 올바른 도(道)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자로서 이들에게 ‘인(仁)’과 ‘의(義)’는 당연한 덕목이었다.
선비는 온화한 기상에서 어짐(仁)을 보여주며, 비분강개한 기상에서 의리(義)의 준엄함을 드러낸다. 곧 ‘인’과 ‘의’는 인간의 타고난 성품에 근거한 덕성이자, 선비정신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선비는 옳지 못한 세력이나 국가의 당면한 위기 앞에서는 인의 온화함보다, 의의 지엄함을 밝히는데 투철했다. 그리해 실제의 선비정신은 ‘의리정신’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선비의 정신세계는 유교이념 자체가 그 핵심을 이룬다. 그것은 인간의 성품에 내재된 ‘의’를 추구하는 정신이며, 이 가치를 위해선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것이다(살신성인-殺身成仁). 특히 이민족(異民族)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때, 철저히 항거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선비는 구체적 시대상황 속에서 가치규범을 준수하기 위해 엄격한 비평의식을 발현한다. 정당성을 천명하고 이를 수호하기 위하여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사안을 철저히 비판한다. 정당함과 의로움(正義)을 지키기 위하여 불의와 맞서서 싸우는 저항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다. 선비는 나아가고 물러남이 분명하고, 의(義)와 이(利)의 분별이 명확하였다(견리사의-見利思義). 이러한 선비정신은 개인의 생각이나 행동과 같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한 사회와 국가· 국제관계에 이르는 중대한 문제에까지, 절대적인 분별기준과 실천적 행동원리가 되었다.
선비정신은 시대적 사명감과 책임의식으로 대변되는 정신이다. 선비정신은 의리(義理)와 지조(志操)를 중시한다. 인간으로서의 떳떳한 도리인 의리를 지키고, 그 신념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간직하는 것이다. 또한 선비정신은 청렴과 청빈을 우선 가치로 삼고, 일상생활의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한다. 그렇다고 선비의 삶이 근엄하고 강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상(理想)과 현실의 벽(壁)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흔들리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풍류와 해학, 유유자적(悠悠自適) 산수(山水)를 사랑하며 여유로움을 즐기기도 했다.
요즘 총리나 장관, 여타 공직자들의 청문회를 보는 국민들은 실망의 도를 넘어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저들에게 우리선조들의 ‘전통윤리’라 할 수 있는 선비정신이 조금이라도 계승되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인의와 지조, 청렴으로 상징되는 선비정신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현대적 ‘지식인상(像)’ ‘정치인상(像)’으로, 그리고 ‘정신적인 유산’으로 재조명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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