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희룡 도지사는 1%의 제주도가 낳은 ‘전국적’ 인물이다. 대입학력고사 수석, 사법시험 수석이 그의 꼬리표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시험으로 뽑는다면 유력 후보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 ‘1%’, 그 ‘1등’ 모두 그에겐 극복 대상이기도 했다. 공부 1등이 정치 1등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개혁파 선두주자였지만 서울시장 후보경선, 당 대표 선거에서 줄줄이 쓴 패배를 맛봤다. 원 지사가 출마선언을 할 때 ‘용이 결국 이무기가 되고 말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아니다. 오히려 이무기가 용이 될 수 있었다. ‘찬밥신세’가 분명한 그의 처지로선 제주지사의 자리가 ‘마지 먹지 못해 먹는 떡’이 아니라, ‘너무나 맛있는 떡’일 수 있었다.
성서 말씀이다. ‘여호와 하느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과의 언약을 깬다. 하느님이 그들을 찾아오셔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아담이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해 숨었나이다’고 대답한다.
원 지사에게 되묻고 싶다.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고 말이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는 과거 전두환과 함께 있었고, 전두환에게 세배를 하고 있었다. 2007년 1월 2일, 한나라당 대권 주자인 그가 전두환을 신년인사차 찾았고 큰 절을 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기자회견을 열고 `사려 깊지 못한 행동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한다`고 했다. 당시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그를 비난하는 접속자가 폭주해서 한때 가동이 멈추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렇게 큰 해(害)가 됐을까? 원 지사의 과거 행적에 대한 비난은 당연했다. 국회의원 시절, 그는 4·3위원회 폐지 법안에 공동 발의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당론에 의한 지도부의 일괄 서명’ 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2000년 국회의원 당선 후 12년 간 단 한 번도 4·3위령제에 참석한 사실이 없다. 4·3위원회 폐지법안을 공동발의한 원희룡 지사의 제주의 아픔을 말할 자격이 있으며, 그가 과연 제주의 아들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당연했다. 어디 그 뿐인가? 제주4·3특별법 개정안 발의에도 동참했다. 2008년 1월 21일. 당시 한나라당 의원 등 130명에 의해 제주4·3특별법개정안이 발의됐다. 그 후 원 지사는 당론으로 소속의원 전원의 날인을 일괄적으로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 지도부가 일괄적으로 서명 날인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것은 변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원 지사의 국회성적표도 매우 초라했다. 특히 3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발의한 법안은 총 13건으로 연 1.08건에 불과했다. 제주를 위한 법률을 단 한건도 없었다. 2012년 한국 매니페스토운동본부는 그에게 ‘공천불이익 대상’ 의원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공천불이익 대상자 23명 명단에 올랐다. 그렇지만 이번 고향 제주도에서 도백(道伯)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대권에 도전하기 위한 실험의 도구로 제주를 인식하거나, 입신양명을 위해 제주의 ‘특별한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의 행보가 바로 그의 미래에 대한 대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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