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권리 감상, 문화향유
시민의 권리 감상, 문화향유
  • 제주매일
  • 승인 201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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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명선(조형장가)
세상과 단절은 피하고 싶었고 방법만 있다면 서귀포를 벗어나려 했다. 20대 때 좁은 서귀포를 떠날 계획이었다.  변방 소외된 기운, 꽉 막힌 군상처럼 살아질까하는 두려움이 많았던 젊은 시절이었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 소통의 통로가 없는 것 같았던 서귀포에서 나는 오랫동안 예술노동자로 살고 있다. 여유 없이 일만하는 부모, 우리 미래도 숨 가쁜 노동만이 존재하는 일상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술관에서 담소하며 차 마시는 이웃 일본 노인들을 보며 앞으로 변화하는 우리시대의 모습을 꿈꾸기도 했었다. 서귀포에서 과연 이러한 삶을 꿈꿀 수 있는 곳인가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모든 시민들이 생각한 미술관의 기능은 작품을 감상하는 전시장의 기능을 넘어선다. 미술을 즐기는 방법은 직접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의 창조적 행위 뿐 만이 아니다.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는 감상과 문화적 향유는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이다. 설치돼 있는 다양한 매체의 작품은 이제 형식과 그 전시 방식을 넘어서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감상은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 파급의 효과는 예술 교육의 가치 있는 효과를 넘어 다른 매체에 영향을 주며 재탄생 된다. 그 정신과 깨달음을 주는 감상의 묘미 우리는 돌아가서 새로운 에너지로 각자의 자리에서 창조의 힘을 얻을 수 있기에 더욱 그리운 것이다.
서귀포에서는 이런 삶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서귀포는 1981년 시로 승격하고 30년을 훌쩍 넘겼다. 돈이 되면 산천을 팔았다. 시민들의 삶의 질과 관련된 시설은 이렇듯 더디게 진행되어 왔다. 기대하며 우여곡절 끝에 ‘서귀포 예술의 전당’이 문을 열었다. 참으로 오래도 걸렸다. 착공한지 5년, 공연장을 비롯한 전시장이 마련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꿈꾸는 미술관이 아닌 전시장이다. 전시장이지만 규모나 시설이 잘 갖추어졌다면 위로가 되었을 법도 하다.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열악한 이 지역에서 작업 중인 많은 작가들에게 절망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해야하는 시민들의 권리를 무시되어졌다.
전시관 건축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얻고 전시장을 디테일한 작업으로 만들기 위한 5년이 아니었다. 서귀포 예술의전당 5년의 건립 진행 과정에서 전시장의 규모와 쓸모는 축소되고 변경하는 기간이었다. 처음 설계와 전혀 다른 면모다. 시민들의 감상과 향유를 위한 일말의 배려도 없는 공간, 전시장이 되기는 역부족이 되고 말았다.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요청으로 서귀포예술의전당 전시실은 6월 개관전시도 못한 채 지금 현재 구조변경 중이다. 협소한 공간 안에 구조변경이 잘되어질지 이 또한 근심이다.
유연한 곡선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는 서귀포예술의전당, 절묘한 곡선이 삼매봉과 어우러지고 서귀포 절경과 칠십리공원과 연결된 ‘서귀포 예술의 전당’은 진정 ‘외관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길 바란다. 다양한 문화 예술의 매체를 펼쳐낼 수 있는 서귀포 문화 예술의 메카가 되기를 바라는 것, 그렇게 되도록 지켜보는 시민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시민들이 산책하다 공연을 보고 전시를 보는 내면이 아름다운 곳이 되길 바란다. 그런 소통의 장을 제대로 만들어 가게 하는 것. 우리시민의 눈으로 똑똑히 지켜내야 할 권리이다. 간송 전형필선생이 문화로 나라를 지켜내듯이 서귀포의 예술 감상과 문화향유의 권리를 기꺼이 누리는 서귀포시민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이 지역의 정체성을 단단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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