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진정한 더위의 서막이 열리는 7월, 긴머리 싹둑 자르고 푸른하늘과 바다 빛깔로 물들여 머리카락 사이사이 바람 길을 터놓으리라. 평생에 한번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누가 주책이라고 한다면 ‘내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는 중’이라고 할 생각이다. 요즘 유행하는 버킷리스트 덕분에 어지간한 일은 버킷리스트라고하면 관대하게 봐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아줌마가 염색을 하면, 더군다나 파랗게 물들이면 어지간한 주책이요, 꽃다운 십대 소녀가 해도 날라리 소리를 듣는 게 십상인 한국사회에서 선입견이란 얼마나 강력한지,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조카는 놀랍게도 학교에서 두발규제를 하는 걸 반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필요하다고 한 적이 있다. 이유를 물으니 ‘다른 헤어스타일을 뒤에서 보고 있으면 학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하버드생들은 공부 못하겠다.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다양한 머리색, 피부색, 눈색깔에 자유로운 스타일까지 겸비하고 한 교실에 모여있단다. 너의 이론대로라면 세계 최 하위대학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니?” 조카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선입견이 틀렸음을 시인했다. 멋진 녀석이다. 그러고 보면 선입견이란 실상 얼마나 나약한지, 이렇게 그럴듯하지만 모순에 가득차고 허술한 선입견을 조금만 뒤틀면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다. 큰 사고 안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며 즐겁게 살자고 다짐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이런 나를 흉보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도 종종 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상황에 치이다보면 어느새 거대한 사회의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마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상처도 받고 아물고 해야 사람이 단단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곁에 남고 또 모여 들기도 한다. 세상이야 어떻든 나 자신은 변할 수 있다. 자기를 위한 작고 소소한 혁명을 일으키면 내 주위만큼이라도 변하리라. 자신이 변하면 우리의 주변이 약간 또는 많이 변한다. 바로 그만큼이 우리의 세상이다.
살짝 미치면 인생이 즐겁다고 했던가, 마음속 열정을 가로막는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자. 버킷 리스트 핑계를 대자. 평생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데 어쩔 것인가? 어지간한 주책을 떨면서 사는 게 건강하게 사는 데는 상책이다. 이상은 오늘부터 나를 힐끗거리며 간혹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담담히 받아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자 다짐이었다. 인생 사십오년만에 파란빛깔 머리 염색 한번하면서 참 설레발이 대단하다. 그래도 자신감을 가지자. 혁명은 본능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반전! 색깔이 마음에 안 들게 되었다. 푸른 하늘과 바다는 물 건너갔고 먼지 낀 푸르둥둥한 카펫쪼가리 한 장 덮인 느낌이랄까? 나의 혁명은 신랑과 아들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에잇! 다시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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