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달이 몹시 밝다. 왜적은 잔꾀가 많아 달이 없는 밤에도 습격해 오겠지만, 이처럼 달밝은 밤에는 틀림없이 습격해올 것이니 경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이순신)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난중일기’의 한 대목이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장수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이 선명하다. 이 땅에 침략해 온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와 겨레를 지켜야 하는 전쟁이다. 전쟁은 어디에 있는가? 이순신 장군에게 있어서 전쟁은 온몸에 있었다.
푸른 하늘이나 오동나무 잎새 혹은 출렁이는 바다나 갈매기 울음 속에 있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에게 있었기에 영웅 이순신은 지모와 정력을 쏟아 전쟁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군사들은 장군과 더불어 한 몸이 되었다. 군사들이 존경하는 장군은 전리품을 군사들과 나누는 장군이 아니다. 모든 위험, 고통, 수고를 자기들과 함께 하는 장군을 군사들은 존경하는 것이다. 그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었다. 그런데 그는 위험한 전쟁의 와중에서도 끊임없이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난중일기’를 통하여 그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기가 이처럼 엄숙한 뜻을 지니는 것만은 아니다. 날마다 생긴 일, 느낌 등을 진솔하게 기록한 글이 일기의 사전적인 풀이니까. 그러나 우리가 아름답거나 피로했던 하루를 보내고, 이제 과거가 된 시간의 빛살 속에서, 눈을 뜨고 자기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위안이며 축복이다. 그것이 고요한 시간이라면, 내일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기는 피곤한 사람의 마음의 친구이며, 위로의 손길이며, 또한 예언의 울림이기도 하다. 축도의 한 형식이기도 한 일기는 마치 쇠붙이를 끌어들이는 자석처럼 우리를 평형상태로 잡아당긴다. 거기서는 행동한다거나 욕망한다거나 긴장한다는 것은 그만 두고, 우리는 본연의 질서 속에서 평안을 찾는 것이다.
일기에서 만나는 자신이야말로 현실에서 생명을 누리는 나의 모습이다. 일기를 쓸 일이 없을 때, 없다는 그것을 기록한 것이 일기이다. 문장력이나 사고력 등등은 덤으로 따라와 자기를 꾸며줄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인류의 스승들은 일기쓰기를 권장해 왔다.
최근에 일기와 관련하여, 초등학교에서 미묘한 문제가 제기되어 논쟁을 벌이고 있다. 교육적인 입장에서 일기쓰기를 습관화하고 문장력을 기르도록 과제를 부과한 것까지는 이의를 내놓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일기를 제출하도록 하고, 선생님이 검사를 하는 데서 발생하였다. “일기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얼굴을 붉히지 않고 은밀히 말할 수 있는 삶의 부분”(비어스)인데, 그것을 타인인 교사가 검사한다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것이다.
교육적 입장과 인권적 차원의 옳고 그름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의 밑바탕에는 오늘날 사회에 만연하는 불신풍조와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것이다.
우리가 자연의 질서를 따라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때, 이러한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실재를 부인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초등학교 어린이의 일기쓰기에서 문제가 발생한 현실 앞에서, 이순신 장군의 우국충정이 아니라도 나의 애를 끓는다.
김 영 환<전 오현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