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제국대학에 다니고 있는 이즈미 세이치는 1936년 새해 첫날 산악부 대원들과 함께 한라산 정상에 도달했다. 그러나 강풍과 눈보라 속에 산악부 대원 중 한명이 조난을 당했다.
이 사건은 그가 '문화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 후 그는 한라산과 제주 섬마을 곳곳을 누볐다. 1930년대의 제주도에 대한 총체적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의 30년에 걸친 연구는 1966년 '제주도(濟州島)'라는 한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제주도'에는 그 당시 제주 섬과 사람들을 보여주고, 30년의 세월이 오롯이 녹아있는 80컷의 희귀사진이 담겼다. 이어 자연환경에서부터 신화와 역사, 사람들의 의식주를 비롯해 종교, 언어, 풍습, 상례·혼례·제례 등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섬의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다.
40년도 더 된 책이 왜 이제야 주목을 받는 것일까. 최근에야 번역본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번역은 도내 언론인 고(故)김종철씨가 맡았다. 그의 부인인 김순이씨가 십수년간 번역 원고를 가지고 있다가 최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 책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제주도'는 내게 큰 감동이었다. 그의 학자적 자세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며 "인류학적 사고의 총체적 시각이 갖는 인식의 힘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듯하다"고 평했다.
이어 "책은 제주도에 대한 연구서를 넘어서 인류학적 조사 방법과 분석, 서술의 한 전범을 제시한 명저"라고 덧붙였다. 책은 여름언덕에서 펴냈다. 값=2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