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 유통 질서'는 농업 발전의 초석
'종자 유통 질서'는 농업 발전의 초석
  • 제주매일
  • 승인 201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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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식(국립종자원 제주지원장)
▲ 이재식(국립종자원 제주지원장)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 한 쪽 벽에는 ‘農夫餓死枕厥種子(농부아사침궐종자)’라는 글이 걸려 있다. ‘농부는 굶어 죽더라도 종자를 머리맡에 베고 죽는다’는 뜻이다. 실제 종자를 양식으로 쓰면 하루 이틀 배고픔은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논밭에 뿌려 거두면 장기간 먹을 수 있는 더 많은 양식을 수확할 수  있는 종자이기에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긴 우리 조상들의 우직함과 결기가 서려있는 글귀다. 그런데 이렇게 먹는 것이 지상최대과제였던 농경시대만큼 현대에도 종자의 중요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종자는 요즘 농식품산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위 핫(Hot)한 아이템이다.

농경시대 농업은 먹고 살 정도의 농작물을 생산하면 족했지만, 현대 농업은 생산된 농산물의 거래를 통해 소득을 창출하는 경영의 영역에 가깝다. 따라서 어떤 종자를 선택해서 파종하느냐가 농가 소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제주의 대표작물인 온주밀감을 재배하던 농가가 한라봉, 천혜향 같은 다른 품종으로 전환하여 더 높은 소득을 얻는 것을 보면 종자 선택이 농가 경영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종자가 생산?유통되려면 발아율, 건전성, 병충해 등에서 일정 조건을 갖춰야 한다. 제주오일장에서 산 한라봉 묘목을 심었는데, 몇 달 뒤 온주밀감이 달린다면 어떨까? 씨감자를 파종했는데 이게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어서 잘 자라지 않고 시들시들 말라 죽는다면? 열매가 훨씬 크게 열리는 신품종인 줄 알고 사다 심은 블루베리 묘목에서 기존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열매가 열린다면? 실제로 종자와 연관된 이런 문제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고, 심지어 어떤 농가는 한해 농사를 완전히 망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종자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중요한 식량작물인 벼, 보리, 콩, 옥수수, 감자 등을 종자보증제도로 관리하고 있다. 해당 품종의 종자를 적법한 기준에 따라 채취했는지, 품질 기준은 만족하는지 등을 정부나 정부가 인정한 종자관리사가 보증한다. 종자를 판매하거나 공급할 경우는 반드시 그 품종명, 발아율, 유효기간, 수량 등이 표시된 보증표지를 부착해야 한다.
또한, 보증제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과채류 등을 포함한 모든 종자의 용기나 포장에는 품질표시사항을 기재해야 한다. 정보를 직접 확인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해서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불량 종자로 인한 농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불량종자 유통으로 인한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국립종자원과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종자 관련 생산업체, 판매상, 취급업체 등을 조사하여, 종자업 등록, 품종의 생산 및 수입 판매 신고, 품질표시 등의 여부를 확인한다. 위반 시는 사안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의 벌금, 과태료, 행정조치 등의 처분이 내려진다.
최근 국립종자원 제주지원은 과수 묘목이 많이 유통되는 3, 4월을 맞아 제주시?서귀포시와 합동으로 과수묘목 유통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정상적으로 품질표시를 해서 판매하는 업체는 거의 없었다.

종자는 농업 생산의 근본이자, 국민 먹거리와 직결되는 매우 소중한 자원이다. 종자업체와 농업인은 이러한 중요성을 되새겨 종자의 생산과 유통 관리, 품질표시 등의 기준을 준수해 줄 것을 당부한다. 국립종자원 제주지원도 도내 종자 유통질서 확립을 위해 철저한 점검과 행정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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