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식목일 밤, 강풍을 타고 온 산불이 강원도 양양군 전체를 덮친 후 양양군의 모습이 T.V로 방영되는 것을 보았다. 바람에 날아다니는 불씨들로 인해 물갑리 마을 아홉 가구 중 일곱 가구가 잿더미가 되었고 용호리 마을도 피해가 컸다. 볍씨와 농기구가 다 타버려 농사를 지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미처 풀어주지 못한 소가 타서 죽었고 용케 피신했다가 집터를 찾아 돌아온 강아지도 검게 그을렸다. 눈물을 흘리는 한 주민은 소방대원들에게 원망을 퍼부었다. 불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빨리 와서 물을 뿌리라고 할 때 뿌렸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며 잿더미로 변한 집터에 앉아 담배만 피워대는 모습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으리라.
좀더 신속하지도 치밀하지도 못하고 언제나 사후에 깨닫게 되는 행정 처리가 안타깝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려 망연자실한 주민들, 그리고 귀한 보물들이 사라진 낙산사의 산불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이며 무엇을 원망할 것인가?
주민의 말대로라면 이번 산불의 교훈은 바오밥 나무를 어린 싹일 때 재빠르게 뽑아 내야한다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뿌리가 커지면 제거하기에는 너무 늦어 소행성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이번의 강원도 산불의 피해가 컸던 점도 바람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어 불길을 잡지 못한 것도 한가지 이유가 되겠지만 불이 번지기 전에 화의 근원을 없애지 못한 점에 대해 그 주민은 탓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스승 한 분이 언젠가 학생들에게 식목일이 무엇을 하는 날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분은 식목일은 나무가 많은 산의 나무를 나무가 없는 산으로 옮기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이유인 즉 산에 나무가 너무 많으면 산소가 많아져서 건조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스파크가 일어나 산불이 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나는 그럴 듯도 하다며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반발을 했었다.
아무리 건조한 바람이 스파크를 일으킨다 해도 나무와 나무가 촉촉이 젖어있으면 불붙을 일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녀간의 사랑처럼 예외적인 것도 있지만 바람이 건조하기로는 겨울이 더 심하지만 겨울에는 산불이 지금보다 덜하다. 오히려 겨울에는 산 보다 도시에 불이 발생하는 빈도가 높다. 눈이 쌓인 겨울 산이 지금보다 수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나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은 조그마한 부딪힘에도 화를 벌컥 잘 내며 싸움이 붙기 싶다. 마음이 건조하기 때문이다. 남의 아픔을 보고 같이 아파하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 나서는 이들의 가슴은 늘 젖어 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무모한 불이 그리 쉽게 붙지는 않는다.
정부에서 피해조사를 마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부분 주민들은 농가 부채를 떠안고 있는데 이번에 더 많은 빚을 지게 되면 어찌되겠는가. 비싸게 구입한 농기구에 지원금도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농사를 지으라는 말인가.
또한 세입자들에게도 지원금이 없다 하니 이재민이 처한 상황을 보다 섬세하게 처리하여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하지 못하고, 관행처럼 듬성듬성 무더기로 행정 처리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또다시 든다. 이번만이라도 좀 더 피해지역 이재민들에게 실질적인 복구작업과 지원 계획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는 가운데 다행히도 전국에서 자원 봉사자들의 봉사신청이 늘어나고 있고 전 국민이 이재민에게 따듯한 마음을 보내주고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피해 지역을 방문하여 실질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고 하니 희망을 가져보자. 복구한다 한들 처음만큼 이재민들을 만족시켜줄 수는 없겠지만 아픔을 나누며 난관을 헤쳐나가는 이 모습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수분을 채워주는 일이 아닐까.
강 연 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