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엔 칼자국... 옆으로 누워 사람만나"
[제주매일 박수진 기자] "'폭도' 누명이 벗겨졌다는 소리에 이제 사는구나 싶었지. 난 바라는 게 없어. 제주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됐으니 소원 풀었지."
제66주년 4.3희생자 국가추념식이 일주일 앞둔 가운데, 27일 오후 제주시 열린정보센터에서는 4·3증언 본풀이마당 '그때 말 다 허지 못해수다'가 열렸다.
이날 4·3사건으로 후유장애인이 된 한병생(사진·81·제주시 삼양동)할머니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60여 년이 지났지만 당시 악질 경찰 '백경사'를 잊지 못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4·3당시 친오빠를 찾아 나섰다 경찰에 붙잡힌 할머니는 '백경사'한테 무지막지하게 뺨을 맞았고, 무릎을 꿇고 각목을 사이에 끼운 상태에서 또 다시 맞았다.
"백경사의 폭행에 31살에 틀니를 했어. 자식들이 마음 아파할까봐 아픈 내색도 못했지. 또한 15살 때는 경찰한테 칼로 15군데를 찔렸어. 아직도 온몸에는 온통 칼자국이 남아있어. 이 때문에 아직도 제대로 눕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 사람들을 만나."
4.3당시 친오빠는 일본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도피자 가족'으로 몰릴까봐 할머니와 아버지, 친언니는 마을 동장네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하자, 할머니와 친언니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겨우 목숨을 부지해 나갔다. 또한 19살이 된 할머니는 보초를 서다 보초막에서 떨어져 기절을 해, 손목이 꺾어지기도 했다.
할머니는 "평생을 함께한 고통이지만 '폭도'라는 오해를 받을까봐, 그렇게 60여 년을 꿋꿋이 살아왔다"며 "당시 고통은 1년 내내 말해도 끝이 없지만, TV에서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됐다고 하니 평생의 한이 풀린 셈"이라고 거듭 말했다.
60여 년간 마음속에 묵혀뒀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할머니의 얼굴에는 '슬픔'보다는 '미소'가 함께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낼 모레 죽을 사람한테, 한 달에 돈 8만원을 줘서 뭐하느냐. 난 대통령한테 말하고 싶어. 생계를 유지할 단 돈 50만원이라고 주라고 말이지."
한편 이날 본풀이 마당에서는 한병생 할머니의 이야기에 이어 양정순 할머니(88)와 김행양 할아버지(82)의 증언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