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도내에 산재해 있는 태평양전쟁 유적들을 종합 정비,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한국지방자치경제연구원이 도의 의뢰를 받아 관련 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용역 대상은 제주도 일원에 산재한 등록문화재 13건과 비지정문화재인 진지동굴 등 642곳으로 꽤 광범위하다. 과업 지시 내용도 진지동굴(陣地洞窟) 등 문화재 보존정비 및 활용계획 수립과 토지 이용계획, 연도별 투자 계획 등이다.
제주 섬은 제2차 세계대전의 한 파트(part)였던 태평양전쟁 당시 패전을 거듭하던 일제(日帝)가 마지막 결전장(決戰場)으로 삼았던 곳이다. 진지동굴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이유다.
따라서 제주도가 태평양전쟁 유적인 진지동굴 등 문화재를 종합 정비 보호하면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7920만원의 용역비가 결코 헛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정비-보호와 함께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사업을 하면서 제주도가 왜 군사정권시대의 독재행정과 같은 비밀주의-밀실주의 행정을 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제주도는 4일 한국지방자치경제연구원이 지난해 8월부터 수행해온 ‘태평양전쟁 유적 종합정비 활용계획 용역’ 중간 보고회를 도청 회의실에서 열었지만 일반인의 출입을 차단했고, 심지어 용역 자료까지 공개하지 않는 등 밀실-비밀주의로 일관했다.
이뿐이 아니다. 앞으로 갖게 될 최종 용역보고회는 물론, 최종 용역 결과물까지 비공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대체 지방자치시대요, 풀뿌리 민주주의 시대에 있을 수 있는 일인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도내 진지동굴 주변 토지가 대부분 사유지인데다 용역 과업 내용에 ‘토지이용 계획’이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토지거래 제한 지역’으로 묶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토지 소유주들의 반발이 예상돼 밀실-비밀주의를 택하는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모든 내용을 공개해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사유지를 제값에 ‘비축토지’로 제주도가 사들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쳐 사유지를 거래재한지역으로 묶어 놓고 헐값으로 사들이거나 수용하려 한다면 군사정권 때의 독재행정과 무엇이 다른가. 강정해군기지와 봉개동 쓰레기 매립장에 이은 또 하나의 갈등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 모든 행정을 순리대로 공개적으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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