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엄중, 전교생 161명 자작시 모아 시집 출간
‘공부하기 싫은 날’, 전문출판사 통해 전국으로
‘공부하기 싫은 날’, 전문출판사 통해 전국으로



아이들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던 교장과 교사가 머리를 맞대 아이디어를 논의하던 중 학생들의 부담이 적은 ‘시’를 쓰게 하자는 데 중지를 모았고, 한 편당 두 세 번의 적지 않은 퇴고 과정을 거쳐 한 권의 책이 지난달 탄생했다.
학교와 학생들은 책 발간을 축하해 5일 오전 학교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교장은 전교생 161명에게 일일이 완성된 책을 전달했고, 떡과 다과도 마련됐다. 학생들의 시낭송이 이어졌다. 축하해주기 위해 자리한 학부모들은 부쩍 자란 딸·아들의 모습에 눈물을 훔쳤다.
시 161편은 소재에 따라 4부로 묶였다. 1부 ‘언젠가 끝날 이 길 위에서’는 학생 자신들의 이야기다. 시 ‘나는 알바생이다’(‘나는 찍는다/바코드를 찍는다//나는 닦는다/바닥을 닦는다//나는 옮긴다/상자를 옮긴다…나는 눕는다/앓아눕는다//그렇다/나는 알바생이다’)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담히 적고 있다. 시 ‘길’(‘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길 앞에/그토록 바라던 그 곳이 있을까//이토록 시리고 차가운 바람 앞에/스스로 나에게 기대어 걸어갈 수 있을까//이렇게 한없이 걸어가다/외로움에 넘어져 다치지는 않을까…’)은 꿈을 향해 도전하는 와중에 느끼는 두려움을 표현했다.

2부 ‘그대는 나의 사계절’은 친구의 이야기, 3부 ‘눈이 쌓여 꼭 팥빙수 같은’은 신엄리 동네 이야기, 4부 ‘풀어 봐도 틀리고 찍어 봐도 틀리고’는 학교 이야기다.
학생들의 시는 웃기고 슬프다.
3학년 양은비 학생의 시 ‘오리털 점퍼’(‘빠진다 빠진다/계속 빠진다//숭숭 난 구멍 사이로/오리털이 빠진다/그 수많은 오리털들이/하늘 위를 둥둥 떠다닌다//날아간다 날아간다/계속 날아간다//그러다 한 자리에 턱하니/앉아 있다가/조그마한 움직임이나 바람에도 여행을 떠난다/마치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처럼’)에는 일감을 찾아 부유하는 우리의 인생이 보인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막내딸의 시 낭송을 들은 학부모 이경자씨(47)는 “언제 저만큼 커서 시를 쓸 수 있게 됐는지 기뻐서 자꾸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책은 출판사 ‘작은 숲’을 통해 당당히 가격표를 달고 전국 서점에 배포됐다. 이는 지난해 신엄중에서 문학특강을 했던 조재도 시인이 학교 측의 계획을 출판사 측과 연결하며 성사됐다.
161편의 시들은 수업시간이나 수행평가 시간을 통해 쓰였다. 출간을 담당한 김수열·이경미 국어교사는 “교지에는 우수한 아이들의 글이 쓰이지만 이 책에는 전교생 모두의 글이 실렸다”며 “오늘이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신엄중 고영진 교장 역시 “처음부터 시집 발간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과 교사들이 서로에게 소중한 선물을 나누어 준 것 같아 기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책 1만1000원·작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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