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한결같이 관심과 사랑을 보내준 도민에게 감사드립니다”
제주의 향토기업인 국일건재사(대표 김원하)가 4월 6일로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국일건재사는 1965년에 문을 연 이래 합판, 목재, 석고보드, 시멘트 등 도내 건축자재 유통분야에서 대들보 역할을 하며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회사다.
특히 도내 건설업계에 누구보다도 싼 가격으로 자재를 공급, 지역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건축자재의 중요품목에 대해 제주도총판 및 대리점 경영을 하면서 대량구매 및 대량판매 등을 통해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건자재업계는 주로 외상거래를 하다보니 다른 업종보다 부침이 심한 곳. 속된 말로 ‘앞에서는 남고 뒤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업종이다. 이런 풍토에서 40년간을 부도 한 번 없이 존속하고 있는 회사는 전국적으로도 예가 드물다. 더욱이 도내의 척박한 기업 환경에서 이처럼 오래 경영을 지속하고 있는 회사를 찾기 어렵다.
김 대표는 이 비결에 대해 “사훈이 ‘최선을 다하자’”라고 소개한 뒤 “고객과의 약속을 철저히 이행하는 등 신용을 바탕으로 경영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이 회사의 신용 우선 경영방침은 도내 업체는 물론, 타 지방의 굴지의 업체들과도 매년 꾸준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제주대 상과를 졸업한 후 다른 사회활동 없이 바로 창업했다. 당시는 도내에 건설이라 할만한 일감이 없는 때여서 한 동안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3년 농촌부흥을 위한 새마을사업이 전개되면서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 “당시 초가개량 등으로 건축자재 붐이 일면서 소비자들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밤 3~4시까지 작업을 해야했다” “돌이켜 보면 이 때가 사업가로서 가장 힘이 났던 시기”라고 회고하는 김 대표.
그러나 회사를 경영하면서 시련은 있게 마련. 가장 큰 위기는 1974년 ‘오일쇼크’ 때 찾아 왔다. 경기가 워낙 안 좋은 데다 건축자재 비축분도 없어 개점휴업 상태가 한 동안 지속되면서 부도위기에 몰렸었다.
김 대표는 이 위기를 기계장비 확충과 경영 합리화로 극복하고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다.
현재 5000여평의 드넓은 야적장과 4개의 창고를 보유하여 건축자재유통에 한 치의 오차도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고 있다. 또한 목재와 합판을 제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필요에 따른 물품도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어 공급하고 있다.
김 대표는 각종 사회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사업에도 열성이다. 한국청소년제주도연맹총장을 18년간이나 역임했고, 도육상경기연맹회장(1977~1983년)으로 있을 때는 도내 최초로 금ㆍ은ㆍ동메달 동시 획득의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1978년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에서는 전국 득표율 1위의 영광을 맛보기도 했다.
이런 김 대표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국일건재사가 보다 오래 존속되는 것. 그는 이를 위해 현재 둘째 아들에게 경영수업을 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