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분단되던 시점에 서서
한반도가 분단되던 시점에 서서
  • 허계구 논설위원
  • 승인 200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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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2차 대전이 끝나기 조금 전의 일이다. 1945년 8월 6일, 소련이 미일간의 관계를  중재해주도록,  일본 대사 사또오는 소련 외상을 만나고자 했었다. 소련과 일본은  중립 조약을 맺어 놓고 있었다. 소련 외상은 일이 있어  이틀 후, 8일 오후 8시에 만나자고 하였다. 일본 대사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위기를 느껴가며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그 긴 이틀을 기다렸다. 8월 8일이 되자 소련 외상은 좀 시간을 당겨 오후 5시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일본 대사는 무슨 좋은 소식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크레물린 궁으로 들어갔다.

소련 외상은  일본 대사를 보고는 즉시 앉은 자리에서 문서 하나를 읽어 내려갔다. “........ 소련 정부는 내일 즉 8월 9일부터 일본과 전생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선언한다.” 기가 막힌 말이었다. 아니 역사상에 도와 달라고 가니 그 자리에서 우리는 내일부터 당신들과 싸움을  시작하오하고 선언한 예가 다른 어느 곳에 있던가.
소련은  펀치를 얻어맞고 드러누워 있는 선수와 시합을 하여 식은 죽 먹듯이 이겼다. 전쟁은 하루 만에 끝이 났다.  그 하루의 전쟁은 한국의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전쟁이 되었다. 

소련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 대해 일순간에 미국과 나란히  전승국의 지위로 올라섰다. 종전은 8월15일로 되어 있지만 2차 대전은 사실상 8월10일에 끝이 났고 나머지 기간은 항복의 조건이나  절차 등과 관련된 여러 사항을 중재하고  결정하느라 시간을 보낸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여러 가지를 배운다.
우리는 상대방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배운다. 미, 영, 소가 소련의 크리미야 반도 얄타에서  또 독일의 베를린 교외 포츠담에서 어떤 것이 말하여지고 논의되었는지를 일본이 정확히 입수했던들  소련에게 도와 달라고 가서 그런 창피를 당하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뉴멕시코주 알라모골드(Alamogold)사막에서 원자폭탄의실험이 성공한 것은 1945년 7월 16일이었다. 그것이 원자폭탄 제1호였다. 그해 8월 6일 히로시마에 제2호가, 9일 나가사끼에 제3호가 떨어졌다. 엄청난 희생자가 나는  그 날까지 그 폭탄의 정체를 일본은 몰랐다. 미국은 일본민족을 패망시키는 것을 원치 않고 있으며 일본에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정부가 서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들을 더 자세히 알았다면 일본은 보다 현명한 정책 결정을 했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나라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요즘의 대일관계며 대북 관계 등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상황을 정확히 알려 더욱 노력해야한다. 피상적인 지식 위에서 혹은 안일하게 생각하는 쪽에서 상대방을 보아서는 안 된다. 

또 한국은 외교의 전문가들을 키워 갖고 있어야 했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 정부의 요직에 있는 폴레이(Pauley) 번즈(Byurnes) 헐레이(Hurley) 등이 적어도 한국과 관동주까지는 미국의 세력권 내에 넣어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38선을 경계로 미소 두 나라의 세력권은 결정되고 말았다. 우리의 상해 임시 정부도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일본과 싸워 왔었던 것이 아닌가. 이 때 우리가 외교에 능숙하며 미국정부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과 인맥이 형성되고 있었다면 좀 더 우리의 입장을 설명 하고 이차대전에서 후견인 노릇을 하느라 극동의 일뿐만 아니라 유럽 등 여러 곳의 일들로 지쳐 있는 미국으로 하여금, 미국의 한국에 대한 노력이 가져올 장래의 파장을 알게 하고,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우월권을 갖도록 노력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외교 전문가들을 키워가야 한다.

우리는  일본이 진정 뉘우치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한다. 세계평화에 기여하려는 사상의 결여가 그런 엄청난 전쟁을 가져왔고 신의 섭리가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려는 미국의 쪽으로 기울어져 간 사실을 일본은 느껴야한다. 전쟁을 종결시킨 그 폭탄도 본래 미국이 가진 지식이 아니라 너도 나도 살길을 찾아 미국으로 망명한 서유럽 학자들이 갖고 간 것이었다.  일본의 근간의 태도는 그들의 사상이 변화된 것이 없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 점을 또한 늘 주목하고 대처해야 한다. 사상은 행동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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