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라고 특별하게 다가오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이제는 그날이 그날처럼 흐르는 노년의 계절이다. 뒤가 돌아 보인다면 끝이 가깝다는 얘기가 될까
내게 신혼의 추억은 뜨거운 애무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한 남자 곁에서 포근히 잠을 잤다는 기억이다. 예식장에서 내내 눈물겨웠던 신부는 펼쳐 보려던 꿈을 모두 접고, 결혼이라는 틀 속으로 들어서는 게 슬펐다. 이를 눈치 챈 신랑 역시 자신의 위로가 무력한 곳에 내 슬픔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고 속수무책의 심정으로 묵묵했다.
신혼여행이란 엄두조차 낼 수 없던 그 시절. 친정어머니가 세를 얻어준 단칸방에서 첫 날 밤을 맞았다. 둘만 남은 호젓한 시간이었으나 마음이 쳐져 있어 고조된 분위기가 될 수 없었다. 국화 향이 그윽하던 10월의 마지막 날, 서로 말없이 피곤해진 마음과 몸을 눕혔다. 어머니께서 정성을 다해 만드신 질 좋은 햇솜의 부드러움과 그의 체온으로 이불 속은 따뜻했다. 울다 지친 신부는 피곤이 겹쳐 부질없는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뒷날은 생기에 차 일어나서 풍로에 숯불을 피워 신랑의 아침상을 준비했다. 소꿉장난 같은 신혼살림의 출발이었다. 사는 동안, 찬바람에 내몰릴 적마다 그 첫날밤의 따듯함을 기억해 보는 것은 위로였다. 아마 짧은 몇 달, 한 이불 속에 잠드는 일이 행복했던 것 같다.
그가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평화는 깨어졌다. 남편이 미워지면 한 이불 속에 있다는 것이 고통스러워진다. 거친 숨소리와 내뿜는 술 냄새는 견디기 어렵다. 이불을 따로 쓰기 시작했다.
서로가 연인이었을 때, 아낌과 존중은 지극하다. 그 곳에는 생활의 곤고함이 아니라 천상을 꿈꾸는 황홀이 있다. 막상 함께 살게 되면 누추함과, 어리석음을 수용해야 한다. 사랑이라는 어휘 속에 관용과 인내라는 처방이 꼭 들어가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참으로 긴 세월 출발의 순수함은 얼룩지고, 몇 번이나 사랑의 부재도 건넜다. 청춘의 설렘은 이미 퇴색한지 오래인 것을. 남편 곁에 잠드는 일이 오히려 어렵게 되었다 시간도 엇갈리고 눕고 깨는 일도 충돌하게 되자 방을 따로 쓰기로 했다. 섭섭한 눈치더니 차츰 적응 되고 있는 듯하다. 아, 남자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혼자 있다는 게 홀가분하다. 그의 잔 투정이나 심부름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다. 언젠가는 서로 헤어져야 할 사이가 아닌가. 누군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사람은 홀로가 되리라. 그 외로움과 허전함을 미리 길들이는 셈 치자.
자매가 없던 어린 시절 나는 늘 혼자였다. 그 습성이 각인되었는지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혼자서도 세상은 늘 가득했다. 나는 이제 나는 마음껏 자유롭다 아, 노년이란 얼마나 행복한 계절인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세상이 온통 무채색(無彩色)이 되지는 건 아니다. 생의 구비마다 은총이 숨겨져 있다는 걸 느낀다. 삶의 채무에서 벗어난 해방감은 더 없는 축복이다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은 사랑하는 사람은 사원의 기둥처럼 서로 떨어져서 존재하라 노래했다. 기둥과 기둥사이를 바람이 흐르도록 공간을 두라는 이 탄원은 질긴 소유욕과 턱없는 의존성이 사랑의 숨통을 조이는 일이 없기를 소망하는 시인의 예지일 것이다.
왜 사원의 기둥인가. 사원의 신성함 속에서만 정화가 가능한 까닭이 아닐까. 신의 숨결만이 세상살이의 비속(卑俗)을 씻겨줄 것임으로.
저 탁월한 시인은, 사랑도 고독한 영혼의 자립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