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시샘하는 칼바람이 몰려든 제주시 봉개동 거친오름 기슭, 제57주년 제주 4.3 사건희생자 범도민 위령제가 열린 평화공원 추념광장에는 1만여명의 도민이 운집했다.
제주경찰청악대의 조율음 속에 오전 10시부터 식전행사가 펼쳐졌다.
57주년을 의미한다는 북 57개가 그날의 아픔을 몰아내 듯 웅장한 소리를 내는 가운데 역시 4.3을 상징하는 끝에 천 조각을 매단 긴 대나무 43개와 흰 무명옷을 입은 화동들이 진달래꽃을 들고 행사장 단상 주위에 도열했다.
오전 11시부터 열리는 공식행사에 앞서 도민들은 1만3735 영위가 모셔진 제주 4.3사건 희생자 영위실을 찾아 혹시나 내 부모, 형제들이 빠지기라도 했을까 확인작업에 열을 올렸다.
영위실 안에 들어서면 '여기는 한라산 거친오름 기슭. 4.3으로 희생된 영령들이 좌정하신 곳. 인류의 염원인 평화와 상생의 기운을 한데 모아 진혼의 불을 지폈으니 그 불꽃은 언가슴을 녹이고 닫힌 마음을 활짝 열리라. 자애로운 숨결은 훈풍으로 흐르고 용서와 화해의 꽃은 영원하리니. 여기는 평화의 정토. 세계의 평화가 이로부터 발원하리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제주시 용담동에 거주한다는 홍모씨(여. 70)는 4.3 당시 고향인 북군 애월읍 어도리에서 희생당한 아버지 명단이 없다면서 도 당국에 항의했다.
"지난해 책자에는 분명히 있었는데 이번에 누락됐다"는 홍씨의 하소연과 함께 다른 도민은 "혹시 고의로 뺀 것 아니냐"고 날선 목소리를 냈다.
관계 공무원은 "절대 그럴 리 없다"면서 "확인한 후 반드시 고치겠다"고 달래는 모습이다.
지난 시절 좌익 인사를 둔 집안에서 연좌제로 인해 직. 간접적으로 당한 피해의식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한 풍경이다.
이해찬 총리의 입장을 앞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때아닌 고성이 들렸다.
모 시민. 사회단체가 '해군기지 철회하라, 4.3 영령 분노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펼치고 침묵시위를 벌이려던 찰나 유족회원으로 보이는 초로의 인사가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너희들만 제주도를 사랑하느냐, 남의 제사집 와서 뭐 하는 짓이냐"는 호통에 이 단체는 슬며시 플래카드를 거뒀다.
이를 두고 주위에서는 "시위를 벌이는 것도 좋지만 행사장 안에서 한다는 것은 문제"라며 "제주도민 전체의 맺힌 한을 푸는 곳에서 다른 목적을 가진 시위는 좀 그렇다"고 관전평을 했다.
봄옷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추운 바람, 을씨년스럽게 울어대는 바람 까마귀,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의 도민들, 그 속에 장중하게 울리는 경찰악대의 반주곡, 참석 인사들의 추도사 등으로 57주년 4.3 행사가 끝을 맺었다.
반목에서 화합과 상생, 다시 한 고개를 더 넘어 온 도민의 거리낌없는 '행사의 장'으로 거듭날 4.3 주간이 올 날을 도민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행사장 이모저모
-.기상대의 비 날씨 예보로 행사 진행에 차질을 우려한 봉행위원회측은 전날부터 "4.3 행사 당일날 날씨가 좋은 적이 없다"면서 한숨만 내쉬며 안절 부절.
화창하지는 않지만 비 날씨가 아닌 것으로 나타나자 한 관계자는 "좀 추운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며 "모든 행사가 일정대로 추진돼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모습.
-.1만 여명이 모여 든 행사장에서 가장 번잡한 곳은 화장실로 이곳을 찾은 도민들은 "임시 화장실을 마련하지 않은 탓에 장사진(長蛇陣)을 이뤘다"면서 당국의 무성의를 질타.
이에 오문호 4.3 사건지원 사업소장은 "조심하게 행사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화장실문제를 빠뜨렸다"면서 "내년 행사에는 대책을 반드시 세우겠다"고 다짐.
-.새천년 민주당은 유종필 대변인 논평으로 '샛노란 복수초는 4.3 영령들의 화신은 아니런가'라는 대변인 논평으로 보기에는 다소 감성적인 제목을 붙여 관심을 집중.
유 대변인은 4.3 57주년을 맞아 유족. 수형자. 후유장애자 등 모든 피해자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뒤 "민주당은 1987년 반공이데올로기에 막혀 거론조차 못하던 시기에 올바른 진상조사를 선언했다"며 4.3사건 진상규명 '원조정당'임을 강조하고 "민주당은 제주도민의 57년 한과 응어리를 함께 하면서 제주가 인권과 평화, 번영의 섬으로 발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