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ㆍ경ㆍ행정이 갈등 부채질
시방 제주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고 있다. 분명 봄바람은 아니다.
찬ㆍ반으로 편을 갈라 주민 갈등을 부추기고 세(勢)를 자극하여 지역 분열을 부채질하는 고약한 바람이다.
그래서 삿대질과 악다구니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니 벚꽃ㆍ개나리 등 봄의 전령들이 봉오리를 열지 못해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봄기운도 주눅들어 저 만치서 서성이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가까스로 57년의 한과 눈물을 다스려 부르는 화해와 상생의 ‘4ㆍ3 진혼곡’이 숨죽여 흐르는데 누가 이처럼 고약한 바람을 부치고 있는가.
누가, 왜, 2005년 1월27일 선포한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새싹도 나오기 전에 ‘평화의 싹’을 짓밟으려 하는가.
놀랍게도 그들은 국가 권력이다. 행정과 경찰과 군(軍)이라는 막강한 이름의 파워 그룹이 갈등과 분열의 바람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행정이 ‘행정계층구조 개편’이라는 명찰을 달고 시ㆍ균 등 기초자치제도를 없애려고 획책하고 있고 경찰은 ‘서부 경찰서 신설’이라는 완장을 차서 지역간 갈등과 반목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해군은 또 어떤가. 2년 전 지역주민들과 시민사회 단체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서랍에 접어두었던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뜬금 없이 꺼내어 예의 군사작전 식으로 “돌격 앞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아리송한 행정ㆍ구조 개편 속셈
고비용 저효율의 행정체제를 저비용 고효율의 행정계층구조로 개편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 자체만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늘어나는 치안수요를 감안한 ‘제주서부경찰서 신설’도 마찬가지다. 쌍수 들어 환영하고 함께 기뻐하며 축하 할 일이다.
국가 안위에 위급한 안보상황에서는 필요하다면 특정작전지역에 군사시설도 배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군겙?행정의 역할에는 마땅히 갖추어야 할 필요겷繹?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그 조건의 제1전제는 당연히 주민동의가 바탕이다.
그런데 제기된 현안에 대한 추진주체들의 행보는 어떤가.
행정의 꼼수를 보자. 저비용 고효율을 노래하면서 어렵사리 착근하고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없애 버리려 하고 있다.
행정계층구조를 단일화하려면 차라리 시ㆍ군이나 시ㆍ군의회 모두를 폐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읍ㆍ면ㆍ동을 도의 직할체제로 하여 읍ㆍ면ㆍ동 단위로 의회의원을 선출하는 방안도 대안일 수 있을 터이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4개시군을 2개시로 통폐합하고 통합시장의 임면권을 도지사가 갖겠다는 ‘제왕적 발상’을 주민투표의 선택의제로 설명하고 있다. 그 진정한 속셈이 어디 있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평화의 기초는 믿음과 이해
서부경찰서 신설과 관련해서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지역간 싸움을 붙인 꼴이다. 이는 앞으로 어느 지역에 경찰서가 들어서든 유치경쟁을 벌였던 지역간 갈등과 반목의 골은 더 깊어질 것이다.
부지확보의 수월성ㆍ예측가능한 동부경찰서 신설 등 향후 치안수요에 대비한 지역균형 발전 등을 감안해 추진했었다면 지금 같은 지역간 감정싸움은 없었을 것이다. 경찰의 졸속추진이 만든 분란이다.
그리고 2년전 거두어 들였던 ‘화순 해군기지 건설 계획’은 또 무슨 ‘씨나락 까기’인가.
그새 국가안위에 중대하고도 절박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인가.
해군은 ‘제주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힘이 있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힘의 논리다.
‘전쟁을 통하지 않고는 평화를 쟁취할 수 없다’는 일각의 국방론(國防論)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평화의 섬 제주의 평화’는 전쟁의 반대개념으로서 만의 평화가 아니다. 믿음과 이해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평화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와 인권과 정의에 대한 소망으로 이뤄지는 평화다.
그렇다면 ‘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힘의 논리는 머쓱해 질 수밖에 없다.
경제 논리와 대민 진료 봉사 등 순기능만을 선전 할 것이 아니다. 자연환경 및 인문환경 오염이나 파괴, 조업 등 주민 생존권과 재산권의 제약, 모슬포 군비행장의 전투기지화 우려 등 도민들의 의구심을 갖는 부정적 측면도 까발려야 할 것이다.
제주평화의 섬 지정과 최근 불거진 독도 문제에 편승하여 끼워 팔기 식이나 군사작전 식 밀어붙이기는 곤란하다.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3각(脚)주체’들은 깊이 생각하고 조금은 부끄러워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