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에는 눈이 있고 땅에는 야자수가 있는 아름다운 땅, 노 해녀의 휘파람이 거센 바람을 이기는 땅, 둥그리 봉긋 나즈막하여 아이, 노인 차별없이 모두 받아들이는 오름의 땅 제주에 봇짐을 푼 지 9년이 되었다. 제주. 육지인들에게는 낭만의 남쪽 땅이지만 텃새가 강하다고 소문난 지역이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은 사람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인데 어딘들 그리 쉽겠으며 무엔들 그리 어렵겠는가. 사실 지역 사회의 문화와 내 개인의 문화가 충돌을 일으키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난 이곳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울렁 더울렁 살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였고 어느덧 나는 ‘성산일출 축제’의 기획위원을 맡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 성산 일출봉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제주가 세계적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기에 성산시민은 축제를 제주민 전체가 즐기고 나아가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고 싶은 열망에 차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급속히 확산된 우리나라 축제문화의 단점들을 지적하기에 바빴던 나는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우리는 ‘축제는 즐거워야한다’는 신념 하에 관망보다는 참여를 유도하고 더불어 감동까지 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마련했다. 그중 달집태우기는 마을마다 말띠 주민들이 나와 릴레이로 꼭대기까지 성화를 봉송한다. 일출봉의 기운을 받아 내려와 달집을 태우는데 소원쪽지들을 태운 불로 성화를 점화한다는 것이 더욱 특별하다. 농수산물 경매시장이 열리는데 일반인들이 경매에 직접 참여하여 성산의 특산품들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경매 손동작를 배우며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참여한다면 더욱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성산 일출봉의 세계자연유산 지정을 기념하여 탐험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일출봉 정상을 한바퀴 돌아 내려와서 일제 강점기 자살특공대의 거점이었던 진지동굴을 탐험하고, 식산봉을 오르는 코스이다. 아름다운 경치는 물론이고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중식과 기념품도 제공받는다. 한 가지 예쁜 이벤트가 있는데 바로 일출봉 소망 우체국이다. 축제장 내에 마련된 소망우체통에 친구나 가족에게 쓴 엽서를 넣으면 대신 발송해준다. 특히 나에게 쓰는 편지를 일년 후에 발송해주는데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하는 말은 색다른 느낌을 주리라. 게다가 분실염려도 없고 땅을 파내지 않아도 되는 낭만적인 타임캡슐인 셈이다. 귤잼이나 귤요리술, 귤과자, 귤맛사지 용품등 유기농 귤과 껍질을 이용한 다양한 귤 요리를 체험할 수 있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정상에서는 트럼펫 독주가 여러분의 가슴을 감동으로 채워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특별한 것은 아마도 모든 사람이 말가면을 쓰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줍은 얼굴은 청마의 가면 뒤에 두고 모두 어울려 한바탕 흔들어대며 한해에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리자! 문화를 누리는 일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인생을 재미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