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기다림
  • 제주타임스
  • 승인 200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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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다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네”(동백꽃) 이런 가사로 된 대중가요가 대단한 인기를 차지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움의 대상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처럼 속이 타서 멍이 드는 일이 아니라도, 사람의 생애는 기다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이 기다림 속에서 희망과 환희의 밝은 감격을 맛보았고, 때로는 절망과 권태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기도 하였다. 수많은 시집과 가요들이 기다림으로 인한 고독과 아픔을 노래하고 있는 사실이 이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지치고 힘겨운 기다림이 있는 한편에는 설렘과 활력이 넘치는 기다림이 존재한다.
하루 밤만 자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어린이는 부풀오르는 기다림으로 내일 아침이 밝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는 훈련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온다.
먼저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고, 다음은 우리가 폭풍의 언덕에 버려진 미아가 아님을 깨우쳐 준다.
나와 더불어 인생을 순례할 이웃이 있고, 내가 체험할 특별한 일이 있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기다림은 우리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상황에 좀더 깊은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기다리는 힘이 없는 사람은 사는 힘도 없다” 는 격언이 있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현재의 삶을 확인하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기다림을 통해 우리는 나 자신만으로 충분한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를 기다리는 이웃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약속되지 않은 곳에 더 많이 살고 있다.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잊혀진 노인들, 불구자들, 갇혀진 이들, 따돌림을 받는 청소년,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 등등, 그들은 마치 구조를 기다리는 파선한 선박의 승객들처럼 우리를 절실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찾아가는 걸음걸이는 연인을 만나러 갈 때와 같은 경쾌한 긴장을 일으켜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땅에서 과일 나무가 자라듯, 우리의 삶에서 결코 다 써버릴 수 없는 보화가 자라나게 할 것이다. 거친 황토로 매마른 들판에도 이따금 단비가 내려 각종 생물들이 풍요롭게 살아가도록 한다.

우리가 삭막한 도시의 복판을 걸어가고 있다 할지라도 가끔은 단비와 같이 넉넉한 삶의 활력소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계기를 희망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즉시 충족시키기에만 도취되어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런 일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교차로에서 2, 3초를 기다리지 못하고 신호등이 켜지기 전에 질주하는 자동차, 건너가는 행인 등등, 자신의 욕구에 노예처럼 얽매인 모습이다. 음식점에서, 바쁜 일도 없는데 2, 3 분을 못 기다리고 빨리 대령하지 않는다고 야단치는 사람, 그 밖에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기다리는 훈련을 계속해야 할 경우는 허다하다.

기다림은 자기 성숙의 어비이다. 즐겁고 뿌듯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미래의 일을 열심히 기다려야 하겠다.
내가 만나야 될 사람, 체험해야 될 일들,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을 찾아 갈 시간을 기다리며,
초조와 불안을 극복해 나아가야 하겠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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