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치유를 위한 걷기
사회적 치유를 위한 걷기
  • 제주매일
  • 승인 201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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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윤(전 제주민예총 정책실장)
▲ ▲ 김석윤(전 제주민예총 정책실장)

‘웰빙(Well-being)’과 ‘지속가능한 삶’이란 말은 이제 일상에서 매우 친숙한용어가 되었다. 몇 년전만 해도 낯설던 이 용어가 우리사회 구성원 사이에 자주 오르내림은 막연히 ‘나도 그렇게 살고싶다’거나 ‘모두가 그렇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난 이 두 단어를 매우 싫어한다. 싫어하는 이유는 두 단어의 내면에 숨은 인간의 욕망이 읽히기 때문이다. ‘웰빙’이란 단어의 이면에서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얼마나 퍽퍽하고 사회적으로 방치되었으면 이럴까 싶다. 나를 돌아보고 옆 사람에게 따뜻한 시선 한 줌 건네줄 여유조차 없었으면 웰빙이란 말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을까 하는 답답함이 짓누른다. 지속 가능한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게 나이테가 켜켜이 쌓여 아름드리 나무를 만들 듯이 기억이 쌓여야 할 것이다. 매순간의 삶들이 털 뭉치로 스웨터를 짜듯이 담벼락 너머까지 촘촘히 연결될 때 포근함이 묻어날 것이다. 털실처럼 서로를 꼭 껴안을 때 이웃의 삶은 더 건강하고 개인의 삶도 밝아질 것이다. 이 또한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사회가 모다들엉 함께 했을 때 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기’ 는 우리사회 구성원이 맹렬히 열망하는 희망으로 읽힌다. ‘걷기’ 열풍도 그 희망을 대변하는 사회적 트렌드이다. 내가 생각건대 수려한 풍광을 보든, 곶자왈 숲속을 걷든, 걷기의 목적은 자기 치유와 자기 성찰이다.
이런 자기 치유를 더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길 걷기는 어떨까?
4·3평화의 길은 4·3유적지를 찾아 걸으면서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을 교훈 삼아 평화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걷는 길이다.
제주사회에서 4·3은 아직도 상처가 다 아물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흔히 트라우마(trauma)라는 말로 표현하듯이 아픈 기억은 쉽게 잊혀지질 않는다. 당사자 뿐만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4·3은 영향을 안 받은 집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제주4·3에 대한 치유도 개인의 치유를 넘어서 사회적 치유가 중요하다.
사회적 치유의 첫 걸음은 역사기억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화의 길 걷기는 아픈 기억을 재생하는 과정이다. 단순히 하나의 사건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부터 땅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더듬는 과정이다.
사람들의 숨결이 스며있는 돌담을 쓰다듬고, 바람결을 느끼며 걷는 길이다.
신당을 돌아보고 숲길을 걷고 곶자왈을 지나면서 자연과 사람과 역사가 어우러져 생채기를 치유하는 과정을 겪어보는 길이다.
사람도 다치고 힘들었겠지만 그 곁에 늘 함께 있었던 땅이나 풀잎, 나무 한그루가 아파하는 소리를 듣는 길이다. 오늘의 삶을 온 몸으로 보듬는 길이다. 가을 낙엽처럼 메말라 바스라져 버린 아픈 기억들을 다독이며 바로 세우고 치유하는 길이다.
사회적 치유는 사소한 물건과 장소에 얽혀있는 기억을 끄집어내어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길 위에서 꽃 한송이, 흘러가는 구름과 소슬바람과 같이 나누면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아픔은 나눈 만큼 작아질 것이다. 아픔이 작아질수록 미래를 향한 우리사회 협력공동체도 싹을 틔울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이 아니라도 좋다. 마음이 가는 어느 시절, 4.3평화의 길을 한번 걷기를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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