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환경영향평가' 3개월 단축 '논란'

블랙파인리조트 시행사인 (주)제주중국성개발(대표이사 딩빙하오)은 지난 13일 오후 6시 30분 해안동마을회관에서 환경영향평가 본안서 작성을 위한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는 제주도행정심판위원회(위원장 방기성)가 사업 시행에 앞서 새로운 환경영향평가와 주민의견수렴, 도의회 동의 등의 절차를 이행하라며 내린 판결에 따른 것으로 이날 설명회에는 해안동마을주민과 제주시, 시행사관계자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최근까지 사업의 반대를 주장했던 주민들은 시행사가 행정심판위원회의결정을 따르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사업 찬성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날 설명회에서 주민들은 외도천 상수원 보호대책, 조성 사업 예정부지 인근 도로 확장문제, 지역주민 고용 대책 등의 질문이 이어졌고, 시행사는 최대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히면서 별다른 이견 없이 설명회 시작 30여분 만에 마무리됐다.
이정윤 해안마을회장은 “지난 7월 마을 총회를 개최, 사업 찬성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면서 “시행사측이 행정심판위원회의 판결을 받아들인 만큼, 앞으로 이 사업이 마을에 이익이 되는 사업으로 잘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시행사측에서 추진 중인 환경영향평가가 도정 임기 내에 사업이 시작될 수 있도록 ‘속전속결’로 진행되면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환경영향평가의 경우 통상 10개월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블랙파인리조트인 경우 내년 2월 제주도의회 동의까지의 모든 절차를 3개월 이내로 단축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환경단체들은 ‘졸속’ 평가라며 반발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이영웅 사무국장은 “환경영향평가는 환경적 요인을 감안, 최근 동․식물 조사와 사계절 조사가 들어가야 한다”면서 “행정심판위 판결은 새로운 환경영향평가를 받으라는 것인데, 이 같은 조사는 사업 착공에 앞서 진행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제주시 관계자는 “해당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일 뿐”이라며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의 재심의 요구도 있을 수 있고, 도의회 동의도 아직 불투명한 만큼 기간은 연장될 수 있다”며 ‘졸속’ 우려에 대해 반박했다.
그런데 일각에선 이 사업에 지난해 특혜 논란으로 사업을 접은 연동 그린시티 조성사업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연관돼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연동그린시티 조성사업은 당시 추진 주체들이 우근민 지상의 선거캠프 출신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도민사회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행정, 자신들이 만든 매뉴얼도 지키지 않아
제주중국성개발이 제시한 환경영향평가 실시근거 및 추진 절차에 따르면 지난달 25일~27일 환경영향평가협의회의 서면심의를 통해 환경영향평가 초안을 제출했고, 지난 3일 환경영향평가 초안 공고 및 공람을 실시했다.
13일에는 주민설명회를 개최, 주민의견 수렴에 나섰다. 제주중국성개발은 이후 전문기관 의견을 수렴해 본안서를 작성하고, 내년 1월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워회의 심의를 거쳐, 2월 제주도의회 동의를 얻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이 같은 계획에 즉각 반발했다. 환경영향평가는 해당 지역의 최근 사계절 생태계 변화를 조사해 공사에 따른 환경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하는 것으로 (주)제주중국성개발이 내놓은 계획이 ‘졸속’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를 관리․감독해야할 행정이 이 같은 부실 환경영향평가 과정을 묵인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제주도는 2009년 사업현장의 환경피해를 최소화 하고, 환경영향평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제주형 환경영향평가 매뉴얼’을 발간, 제주지역에 적합한 개발 및 환경 기준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이영웅 사무국장은 “사업지내 환경영향평가는 사계절의 동․식물 변화를 관찰, 공사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진행되는 것”이라며 “‘제주형 환경영향평가 매뉴얼’에 따르면 조류의 경우 년 2회 조사를, 식물의 경우도 생육 속성을 충분히 파악토로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번 환경영향평가서(초안)의 문제는 조사 시기를 겨울철에 국한시켜 일부 동면 하는 동물(양서․파충류)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식물 생육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매뉴얼에는 반드시 여름 철 조사를 실시토록 하고 있지만 행정의 묵인 속에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무리 환경적으로 보존가치가 떨어지는 지역이라 해도 이 같은 환경영향평가서는 문제가 있다”면서 “행정에서 지키라고 만든 매뉴얼을 자신들이 지키지 않는 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자는 “이 사업은 이미 과거에 개발토록 허가가 난 사업이다. 절차상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받는 것”이라며 “과거 무수천 시티 개발 때 보다 원형보전 지구가 늘어나는 등 별다른 문제없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영향평가 기간이 짧은 것은 시행사가 미리 준비했을 수도 있고, 앞서 받은 것도 있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문제(졸속)가 있다고 몰아가는 건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행정심판 판결을 수용하겠다는 시행사의 입장이 발표되면서 그동안 사업 추진에 부정적이었던 대부분의 주민들도 사업을 찬성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한 주민은 “그동안 잦은 사업자 변경으로 사업 승인과 취소가 반복됐다”면서 “이번 사업 역시 제대로 추진 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사업 추진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앞서 발족된 마을환경감시단 등을 통해 사업의 전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위법행위가 발견될 경우 이에 따른 행정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수천 유원지 개발 사업은 1986년 도시계획시설 지정 후 27년간 수차례 사업시행자가 바뀌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5년 첫 번째 시행자로 나선 (주)무수레저타운이 투자 유치에 실패, 사업이 무산됐고, 2002년 사업을 인수한 핀코리아 역시 3년 뒤 사업승인이 실효됐다.
이어 2007년 1월 세 번째로 개발사업 승인을 받은 (주)무수천 역시 개발 부담금 미납 및 장기간 공사착공 지연 등 이유로 2011년 10월 사업 승인이 취소된다.
장기간 표류하던 무수천유원지 개발 사업은 올해 초 중국자본인 (주)제주중국성개발이 사업부지 매입하고, ‘블랙파인리조트’ 사업을 신청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직 건설토목분야 공무원이 다수 포진된 도내 종합설계감리 업체인 A사가 토지 매입을 대행한 것으로 알려진데다 행정당국이 환경영향평가 없이 사업 승인을 내주며 숱한 논란을 빚었다.
이에 해안동마을회는 지난 9월 무수천 유원지 개발사업 승인을 취소해 달라며 제주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심판 청구, 제주도행정심판위원회가 사업 시행에 앞서 새로운 환경영향평가와 주민의견수렴, 도의회 동의 등의 절차를 이행하라며 조건부 판결을 내리면서 사업이 재개됐다.
한편, 제주중국성개발에 따르면 이번 사업은 제주시 해안동 2510번지 일원 45만1146㎡ 부지에 2626억8000여만 원을 투자, 콘도미니엄(341실)과 호텔(51실) 등 숙박시설과 테마상가 및 힐링센터 등 위락시설을 건립할 예정이다.
이 같은 사업 규모는 이전 사업과 비교해 숙박시설(해군호텔 존치)은 138실 줄고, 상가시설(6만5547㎡→2만3254㎡)도 감소했다. 반면, 원형보전녹지 등 녹시시설은 17만5978㎡에서 190만370㎡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