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툼바치論
서툼바치論
  • 안창흡 논설위원
  • 승인 2005.0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 방언에 서툼바치라는 말이 있다. 일에 익숙하지 못함을 뜻하는 ‘서투르다’의 명사형 ‘서툼’에 무엇인가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바캄가 붙은 합성어이다. 무슨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격에 맞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때 빈정되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요즘은 프로(professional)연 하는 서툼바치들이 많은 세상이어서 프로와 서툼바치를 제대로 구별해 내기란 사실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일을 부리는 사람에게는 서툼바치에게 맡겨서 일을 그르치지 않는 슬기가 필요하고 일을 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서툼바치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프로가 되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할 것이다.

  설득력 부재

최근에 제주도의 행정행위를 지켜보면서 서툼바치라는 용어가 퍼뜩 떠올랐다. 전문가들이 펼치고 있는 행정이라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아서이다. 중대한 일을 진행시킬 경우에 찬·반 등 논란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협의 과정을 거친다면 그 논란을 최소화하고 갈등을 방지할 수 있는 법이다. ‘제주형 행정구조 개편’에 대한 제주도시군의회의원협의회의 반대성명과 시장·군수들의 반대 기자회견을 들어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제주도 행정이 얼마나 막가파식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동안 제주형 자치모형 개편에 대하여 도지사 독단으로 구상하고 연구를 진행시켜 온 것은 아닐 것이다. 테이블에서 도지사와 시장·군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과정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하여 여러 차례 목격하기도 했었다. 그러한 자리들이 단지 형식일 뿐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시장·군수들을 들러리로 하여 도지사 구상대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의 모임을 거치면서 시장·군수들과의 “함께 하자”는 협의점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리더십의 부재에 다름 아니다.(그래서 시장에 대한 임명제와 기초의회 폐지가 슬그머니 끼워졌을까?) 그러한 설득력 없이 어떻게 제주도민 전체를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제주형 자치모형으로서 점진적 대안과 혁신적 대안 두 가지를 제시하고 도민 설명회가 진행되고 있으나 이면을 들여다 보면 혁신적 대안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혁신적 대안이라는 게 결코 혁신적이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제왕적 도지사 권한 강화, 풀뿌리 지방자치 후퇴’라는 평이 나오고 있는 대안이 무슨 혁신이라는 말인가. 이것은 단지 주문에 의해 만들어진 혁신적 대안에 다름 아니다. 결국 주문 당사자와 연구자들의 자질문제로 그 책임이 귀착된다 할 것이다.

도민통합을 먼저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제주도 행정행위가 ‘이레착 저레착’한다는 우려들이 표명되고 있다. 진중하게 접근하고 합의를 도출해내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미약하다고 한다. 도민 모두가 공감하는 혁신적인 제주형 자치모형이 되려면 좀더 신중한 연구가 진행되었어야 옳았을 것이다.

제주발전연구원의 연구결과가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혼자만의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진득한 무게가 느껴지던 제주발전연구원이 너무 가벼워졌다. 최근에 들어 주문자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가벼움의 연구’에 치중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는 것이다.

서툼바치들이 잘하는 일이 있다. 언론플레이이다. 하지만 언론플레이를 통하여 잘한 점이 드러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잘못된 일을 감추려 한다면 일시적 방편은 되나 미구에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며 특히 역사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더라도 도민들은 제주도 행정이 잘하고 있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며 잘못 하고 있는 점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