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활력소
삶의 활력소
  • 제주매일
  • 승인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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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시인.前 초등학교장)
▲ 김광수( 시인.前 초등학교장)

               
  
 무더운 날이었다. 나무그늘로 갔다. 나무는 양손을 들어 환영하였다.   가지와 잎들은 서로 협력하여 햇볕을 가려주었다. 더 시원하게 해줄 수 없을까 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때 바람이 내방하였다.    나무와 바람은 형제처럼 뜨겁게 손을 잡았다. 우애 있는 형제처럼. 힘을 합쳐 시원한 안식처를 만들었다.
 내가 최상의 기분이 되게 그들은 나를 도왔다. 누구나 존경 받아야 할 세상에서 그들은 나를 존경하였다. 그래서 나도 그들을 존경하여 존경 받게 하였다.
 다만 나무 앞에 장벽이 있어서 시야가 가리는 것이 염려 되었다. 바람과 햇볕 그리고 사람이 소통하는데도 답답함을 주었다.
 사람이나 바람은 이럴 때 먼 길 돌아서라도 장벽을 비켜갈 수 있는 것이다. 나무는 장벽 너머 앞 풍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나무는 평생 한 곳에서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할 해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장벽을 뛰어 넘는다는 결심을 해야 하였다. 안 보이는 저 곳을 그리워하면서 꿈을 키워야 하였다.
 마음만이라도 장벽 위 높은 곳에서 꿈을 꾸기로 하였다. 잠결에 꾸는 꿈이 아니었다. 부릅뜬 두 눈으로 꾸었다. 조그만 집 한 채라도 마련하는 꿈을 꾸어 성공시켰다. 마당과 길가에도 꽃을 심어 행복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도 하였다. 그 곳에 크게 자랄 나무도 심었다. 나무는 가지와 잎과 잎들이 친히 다리를 놓아 협력하게 하였다.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게 하였다. 기대했던 꿈을 풀어나갔다. 나는 자연인으로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반면 바람은 어디든 갈 곳이 있어 좋다고 생각하였다.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다니며 남에게 시원한 바람을 선사하지만 해를 끼칠 일도 있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큰 태풍이 있었다. 9월 17일 아침 8시경 성산포 동쪽을 지나간 태풍 산바는 엄청난 강풍이 불어 많은 피해를 주었다. 그 때는 바람에게 욕을 많이 하였다. 바람도 바르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면박하였다. 그리고 바람의 세계에도 질서가 잡혀야 세상의 모든 게 제 자리에 선다고도 여겼다. 
 태풍 산바는 지나간 후에도 한참동안 강풍이 잦아들지 않아 광패(狂悖)였다. 장시간 바람이 남아서 만물을 괴롭히는 것은 처음이었다.     바람은 분명히 허물이 있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남의 허물을 들추어 바르게 고쳐준다는 의미에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간 도리를 못했다는 사람, 부정부패의 장본인, 사회질서 혼란을 야기한 자, 이 저런 사유로 인하여 지탄을 받는 사람이라면 따끈하게 때려서 경각심을 일깨워 반성하고 속죄하게 하였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그래서 참다운 인간으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면 수긍할만한 처사라 할 수 있겠다.
 금년에는 태풍이 없어서 풀과 나무 곡식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아주 고마운 한 해였다. 나무와 햇볕과 바람은 사람과 자연에게 적당히 배려를 잘해 준다면 삶의 활력소 ? 나도 기쁜 마음으로 이 글을 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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