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 너도 순박하면 안 되겠니?
도시인. 너도 순박하면 안 되겠니?
  • 제주매일
  • 승인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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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분(자연농 농부)
▲ 강성분(자연농 농부)


몇일 전 이웃의 귤밭에서 두둑한 비닐 봉지를 들고 나오는 청년을 보았다. 근방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었고 아마도 그 집에 머무르는 청년인 듯 싶었다. 밭 앞에서 아리따운 처녀가 청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녀 앞에서 망신을 주기 싫어 그냥 지나치려다 작년에 그 밭을 분탕질해놓은 양심없는 여행객들이 떠올라 결국 그 청년을 불러 세웠다. “저기요. 길옆에 지나가다 한두개 따는 것은 주인들도 봐줍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서 봉지까지 들고 따오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작년에도 그 밭 길 곁에 사람들이 다 따가고 딸게 없으니 안에 까지 들어가서 마구 따고 껍질 버려놓고... 밭주인이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시골인심 야박하다고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나 하나쯤이야 하겠지만 우리들한텐 수 천명이 매일 저지르는 일이예요. 저기 게스트하우스 주인한테도 괜히 욕먹이는 일이구요.” “아 예 죄송합니다.” 건성으로 답하던 청년은 속으로 시골인심 야박하다 했겠지만 그나마 시골이니까 상황이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이다. 만약 내가 도시의 편의점에서 목이 마르다고 물병 하나를 그냥 들고 나오거나 과일좌판에서 사과 하나를 쓰윽 들고 지나가면 그들은 시골서 올라온 목마른 여행객에게 인심을 베풀어 줄 것인가? 어린아이가 문방구에서 사탕 하나를 훔쳐도 손이 떨릴텐데 왜 그들은 손이 떨리고 부끄럽지 않을까? 도시에서 지키는 기본만 지켜도 혹독한 더위와 거센 태풍을 견디며 농사짓는 농부들의 결과물을 여자친구와 봉투까지 준비해서 뚝뚝 따 나오진 못할 것이다. 어릴 적 남의 사과밭에서 떨어진 사과를 주워왔다가 아버지에게 혼이 난적이 있다. 그 기억때문인지 옆밭 할머니가 너희 농사 잘 안되었다며 당신네 고추며 가지를 따가라 해도 주는 건 받지만 차마 직접 따지 못한다. 이웃이며 같은 농부인데도 말이다. 어떻게 길러졌는지 알아서 일테다. 아무리 흔하게 흐드러진 귤이라도 하나하나 농민의 손길을 받지 않은 것이 없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곳에서는 넘치게 많아 보여도 전 국민이 먹어야 할 귤임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무정하다 싶은가? 몇몇 마을에서 지루하고 목마른 올레꾼들을 위해 무인쉼터를 만들었다. 귤과 커피를 마음껏 먹고 천원을 넣는 박스를 설치했는데 귤과 커피는 없어져도 돈은 안 들어 온단다. 시골 인심 좀 후하게 쓰지 까짓 천원은 왜 받나 싶은가보다. 돈 벌자고 놓은 것이 아님을 너도 알고 나도 알지 않는가? 기본으로 돌아가 두발로 올레를 걷는 이들의 상식을 믿었기에 걸으며 나를 돌아보라고 터놓은 올레 길을 나만 생각하면서 걷나보다.

꽃 중에 가장 예쁜 꽃은 사람꽃이라 했다. 꽃이 추하게 시들면 실망할 뿐 분하지 않고 개, 돼지가 모른척해도 불쾌하지 않다. 여행은 풍경을 따라 가는 길이지만 그 풍경 속에는 사람꽃이 있다. 당신들이 이곳을 여행할 때 우리는 당신들을 여행한다. 당신들이 버린 쓰레기에 지치고 야금야금 사라지는 귤빛에 상처받는다. 도시인이여! 이제 너와 나를 생각하면 안 되겠니? 니도 순박하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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