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가락동 도매시장을 가다
[현장르포]가락동 도매시장을 가다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3.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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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매일 신정익 기자] 지난 14일 새벽 2시. 대한민국 과일과 채소류가 모두 모이는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의 가락동 도매시장은 여기저기서 경매가 진행되면서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농협중앙회 가락공판장 김정배 경매팀장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경매대에 올라선다. 올해 제주산 감귤에 대한 경매가 시작됐다.
“상품을 잘 보고 제대로 찍읍시다”. 김 팀장이 본격 경매에 앞서 중도매인들에게 당부한다. 최근 당초 예상과 달리 경락가가 다소 약세를 이어가면서 가격 반등을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경매가 시작되자 이날 경락가도 예사롭지 않다. 5번과 6번과 상품들이 10㎏ 상자당 5000~6000원선에 낙찰된다. 감귤 주산지로 자부하는 서귀포시 지역에서 출하한 감귤인데도 가격 고전을 면치 못한다.


다시 김 팀장이 중도매인들에게 한마디 한다. “상품을 잘 봐라. 왜 그것밖에 안 나오나…”.

경매 상황을 바로 표시하는 전광판의 경락가 행렬이 1만원을 넘지 못한 채 적잖은 물량이 중도매인들에게 넘어갔다.

이윽고 경락가가 2만원 안팎을 넘나드는 ‘상품’들이 등장한다. 제주감귤농협 표선에서 출하한 ‘신의선물’ 4번과가 2만원, 2만2000원을 찍는다.

상품성이 떨어진 감귤은 여지없이 가격이 곤두박질친다. 1번과는 4500원에 경락됐다.

남원농협에서 보낸 ‘귤향기’ 4번과도 1만3000원으로 선전했다. ‘준건’ 브랜드의 4번과도 1만4000원을 전광판에 찍었다.

다시 일부 유통인들이 보낸 감귤로 경매가 넘어가자 다시 가격이 약세를 보인다. 그런 와중에 상품성이 좋은 일부 감귤도 고전하자 김 팀장은 “좀 더 상품을 봐라. 자세히 봐라. 5번과가 6000원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고 중도매인들에게 잔소리(?)를 건넨다.

서귀포시 색달동에서 출하된 ‘만철’이 치고 나온다. 경락가가 1만8000원을 기록했다. 외관부터 다른 감귤과 확연이 다르다. 금빛 색택이 식감을 자극하고 남을 만 했다.

서귀포농협의 ‘한라산’ 브랜드 3, 4번과도 1만5000원의 경락가로 이날 장세를 힘겹게 이끄는 모습이다.

경매현장에서 만난 중도매인 최준희씨(52)는 “지난달 극조생 출하 당시 부패과가 너무 많아 가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서 “시장에서는 극조생 감귤 품종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17년째 중도매인으로 경매에 참가한 이모씨(55)는 “대부분 중도매인들이 상당량의 감귤 재고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소비가 위축됐다는 반증”이라면서 “당분간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것 같다. 날씨가 좀 더 추워지면 감귤 소비가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며 분위기 반전을 기대했다.

이씨는 “사과와 배, 감 등 다른 경쟁과일들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전제, “그럴수록 농가나 유통상인들은 품질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날 경매에 나온 감귤 가운데는 감귤조례로 출하가 금지된 1번과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포장 상자에 1번과라고 당당하게(?) 표기해 시장에 보냈다.

심지어 1번과보다 더 작은 비상품이 버젓이 2번과로 상자에 찍혀 경매에 나온 경우도 있었다. 경락가는 6000원을 받았다.

비상품으로 분류된 소과(小果)들이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명분으로 시장에 유통되는 것이다.

여전히 부패과도 심심찮게 보인다. 출하과정에서 상자에 눌려 상처가 난 감귤도 섞여 있어 부패 우려를 높게 했다.

천호진 농협공판장 부점장은 “원론적인 얘기지만, 소비자 위주의 출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겨울철에 출하되는 감귤에서 왜 부패과가 발생하는지 등을 면밀하게 점검해 상품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배 경매팀장 인터뷰

“경락가가 1만원 밑으로 떨어지면 농가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사실상 힘들다고 봐야죠. 수확 후 선과, 운송, 상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과 수수료를 제외하면 농가가 손에 쥘 수 있는 소득이 거의 없겠죠”.

농협 가락공판장 김정배 경매팀장은 이 바닥에서는 유명인사다. 웬만한 제주지역 농가와 생산자단체와도 인연이 많다. 그만큼 김 팀장은 제주감귤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산 노지감귤의 경우 출하 이전인 지난 5월부터 가격 상승에 대한 성급한 기대감이 나왔죠. 생산량이 줄어들면 가격은 오를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보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김 팀장은 그런데 최근 들어 가격이 다소 약세를 면치 못하는 것은 감귤로 인한 문제와 외적 요인이 복합됐다고 진단했다.

사과와 배 등 다른 과일들도 소비부진으로 가격 고전은 비슷한 양상이라는 것이다.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소비자들이 과일 구입을 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초기 출하된 극조생에서 부패과가 예상 밖으로 많아 이미지가 떨어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감귤을 출하한 모든 농가나 유통상인들은 가격이 오를 것을 기대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정하다는 게 김 팀장의 지론이다.

일부 출하주들이 고집하는 강제착색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패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상품 규격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상품을 3, 4단계로 구분하자는 얘기다. 소비자들은 2~8번과의 규격을 보고 감귤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화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이다.

김 팀장은 또 소비자들의 신뢰를 확실하게 얻는 방법으로 ‘생산자 실명제’를 꼽았다. 다른 과일들은 대부분 ‘실명제’가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는데, 감귤은 아직도 초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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