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를 풀자
족쇄를 풀자
  • 제주타임스
  • 승인 200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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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리 미꾸라지가 자꾸 흙탕을 치면, 잘 살폈다가 그놈을 잡아내면 되지만, 우리는 그러한 노력 없이 성급하게 그곳에 있는 모든 미꾸라지를 잡아내어 착한 미꾸라지까지 없애버리는 일이 많다. 지난 10일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성적비리 및 성적부풀리기 방지를 위한 학업성적관리 종합대책 발표를 보면 한두 마리 꼴뚜기 때문에 어물전의 싱싱한 고기들마저 다 버리게 되었다.  

 교육인적자원부도 오죽해야 이런 고육지책을 강구했을까하는 일말의 동정도 들지만, 아직까지는 교육 청정지역이라는 제주도에서 이런 내용을 접하니 생뚱같기도 하다. 2인 감독 원칙, 성적관리위원회의 정기적 개최, 성적관리자 지정과 점검, 담임 감독 금지, 교직원은 제 자녀 안가르치기, 교직윤리의식 제고 연수, 교장 연대 책임, 비리 관련 교원 자격 박탈, 해당학교 표창 제외 등등 삼엄하기 추상같다.

 더욱이 과목별 평균점수 70~75점, 과목별 평어 ‘수’비율 15% 이내를 기준으로 하고, 이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성적부풀리기로 간주하는 건 아무래도 지나치다.  예체능과목은 제외한다 하지만 그 외 과목들도 과목별 특색이 있고, 가르치는 교사의 개인차와 방법에 따라 평가 결과는 높낮이가 매우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고2,3학년의 평균, 표준편차, 성취도 분포 등을 정기고사 후 1개월 이내에 작성 보고는 교사들의 업무량을 획기적으로 늘린다. 항상 업무량 감소를 외치더니 하루아침에 공염불이 되어버렸다.  교사의 가르치는 본업이 시험처리에 쏠리게 되어 가까스로 지탱되던 학교 교육은 또다시 옆길로 가게 되었다.

 지나친 규제와 감독은 오히려 부정과 조작을 키운다. 평균점수를 예측해 출제를 하지만 예상을 빗나갈 때가 종종 있고, ‘수’의 비율을 15% 이내로 강제하는 건 학생들의 능력을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하지만, 교사의 권한과 능력 밖이다.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학습시켜 좋은 시험 결과가 나왔을 때, 가르친 보람과 자긍으로 성취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성적부풀리기에 저촉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면 그거야말로 교육욕구를 꺾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부가 정해 놓은 평균과 비율에 맞추려고 지혜를 짠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투여할 교육력의 낭비이며, 교사 스스로가 매진하고자 했던 평가와 교육에 대한 소신의 포기이기도 하지만 더욱 우려되는 일은 조작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험하고 힘든 세상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직이니 청렴이니 도덕적이니 하는 말이 일상적으로 오고가는 곳이 교직사회다.  교사 개개인이 교육자로서의 양심이 살아있고, 학생들과 함께 고락을 나누는 곳이 학교다. 개판이니 난장판이니 하며 학교를 못미더워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볼 최후의 보루가 학교다.

 규제와 감독보다는 해제와 장려다. 선생님들이 소신껏 일하도록 모든 걸 풀자. 그리고 믿자. 선생님들이 신명나게 일하도록 멍석을 깔아주고, 잘한다고 힘을 실어주고 날개를 달아주자. 백 대의 매보다는 한 마디의 칭찬이 낫다 하지 않은가. 못한다고 묶으면 위축되고 잘한다고 추켜세우면 발양되는 것이 사람이다. 의사가 한 사람의 육체를 살려낸다면 교사는 수천 사람의 정신을 키워내고 있지 않는가. 

 소수 교사의 비리로 인해 모든 선생님을 공범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듯 반드시 비리는 불거져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 해당자에게 가차없이 매를 들면 되는 것이다. 오늘도 무구한 학생들과 정성을 다해 교육 소신을 펼치는 다수의 선량한 선생님들의 가늘고 하얀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될 일이다.  

부 태 림 <성산중 교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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