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앞에 왠가 싶다. 푸름을 잊지 않던 소나무, 재선충병에 죽어 나가는 상엿소리 한라산을 뒤흔든다. 그 아름답고 숭고한 육중한 몸이 기계톱 날에 붉은 피처럼 톱밥을 쏟아내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소나무로 칠성판과 관을 짜서 상여를 메고 고향 마을 어귀를 돌아 묘지를 향하던, 그 곡소리 기계 톱 소리가 애달게 들린다. 평소에는 일상에 쫓겨 우리에게 관심 밖에 있었다. 어련히 알아서 나의 조상이고 친구이고 우리 이웃려니 했다. 그래서 소나무의 고마움을 못 느끼고 살아왔다. 소나무는 제주의 아름다운 한라산과 마을을 태풍과 비바람 및 눈보라를 막아주는 은혜를 마냥 주고, 내 몸이 죽어서도 같이 무덤 속으로 같이 묻히는 은자가 아닌가, 그리고 살아서는 우리에게 청정한 산소를 제공하고 힘들 때나 슬플 때나 소나무를 보면서 위안으로 삼아 새로운 삶의 용기를 준다. 또한, 제주에 청정한 공기와 풍광에 반해 제주 관광객 일천만 명 시대를 여는데 일조했다. 그래서 가을이라 서기보다 재선충에 싫음 하는 한라산자락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듯 만감이 교차 하는 착잡한 심정이다. 필자는 지난주에 제주시 도평동 외도 천에서 고사한 소나무 제거 작업에 동참했다. 작업에 동원된 경찰청 직원 및 제주방어사 해병대 병력이 치안과 국방에 여념이 없는 데도 매일 대 병력이 지원되고 있었다. 정말로 경찰청장님과 제주방어 사령관님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제주시 바르기 살기 위원과 예총 12개 장르 회원이 참여했다. 필자는 제주문협 회원으로 참여 했다. 소나무는 우리의 역사와 삶을 같이 살아온 겨레의 영혼의 나무다. 창세기부터 한반도를 푸르게 푸르게 만들어 왔다. 조선조 세조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단심가 "이 몸이 죽어가서~/ 봉래산 제일 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생략)" 소나무에 빗대어 충절을 노래했다. 그리고 법주사 정이품 송이는 왕에게 충성의 의미로, 대한제국 시대는 애국가 2절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나라를 빼앗긴 애국에 표상으로 온 국민이 부르는 노래다. 필자는 소싯적 명절 혹은 제사 때는 솔잎으로 송편을 쪄서 먹으면 송 향의 향긋한 맛이 지금도 살아 있다. 특히 봄이 만연할 쯤이면 송홧가루가 봄바람에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모습에 이성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내 마음의 餘裕(여유)와 安息(안식)을 느끼게 했다. 또한, 성장기에는 정서함양과 희망을 품게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소나무는 우리의 정신뿐만 아니라 물질적 財(재)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건축자재, 선박용, 가구 등으로 쓰기도 하면서 집도 짓고, 숯도 만들고, 옛 적에는 솔 씨앗으로 기름을 짜서 장판을 바르고 했다. 특히 솔잎과 열매, 송진 등은 동의보감에 고혈압, 동맥경화, 중풍 예방 에 좋고, 노화억제 및 감기 예방에 효과가 있다 한다. 그 외에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송진 기름으로 항공기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나라 소나무를 힘들게 하였다. 지금은 송 액을 채취하여 참살이 음료수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렇듯 소나무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주는 힘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저 늘 푸른 소나무 재선충에 빚을 내서라도, 더는 피해을 막아야 한다. 우리 전 도민은 말로만 따지지 말고, 도민 너나없이 총칼 대신 톱과 낮, 곡괭이 삽을 들고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필자는 힘이 부치지만, 열심히 작업하면서 한편으로는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았다. 현장에 그래도 향리 단체장이나 하다못해 동 직원이라도 물질적 지원은 바람이 아니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 이라도 거들어 주는 이 없어, 일하는 사람들이 측은하기도 했다. 그래서 바람은 공무원 도의원 또는 단체장과 회원 분들께서 3개 조 아니면 10개조 로 나누어 작업에 동참했으면 한다. 작은 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도정차원에서는 도 전체를 재난 지역으로 선포하여 중앙에서 지원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